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카드 광고가, 제가 여성으로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에 대해서 삼단으로 요약해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스물다섯, 여자에게 아름다움이란 존재의 이유다

존재의 이유가 아름다움이라니, 아름답지 않은 여성들을 그야말로 '열폭'하게 하는 말입니다.
네, 열폭이라고 해도 할 말 없습니다. 저는 세상의 기준으로 따지면 아름답지 않으니까요.
55는 커녕 44사이즈는 쳐다보지도 못하고, 화장도 잘 하지 않으며, 쌍커풀도 없고 코도 낮고, 머리도 동네 미용실에서 해서 부스스합니다. 그런데, 제가 세상에서 정해 놓은 기준대로 아름답지 않다고 해서 존재할 이유도 없다는, 그런 건가요 설마?
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은 여성들에게 순식간에 실존에 대해서 고민하게 합니다.

카드의 이름은 Sweet Dream. 전국 피부관리전문점과 화장품을 5% 할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커피전문점과 동물병원을 5% 할인하네요. 강요된 아름다움을 꿈꾸는 여성들의 꿈이 과연 달콤할까요? 그리고 스타벅스 다니고 애완견 안고 다니면 된장녀라더니, 이 광고에서는 스윗하다며 소비를 부추기고 있네요.


서른 여섯, 여자에게 내 아이란 질 수 없는 자존심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여성의 몫이라는 걸 확인하는 한편...
"질 수 없는 자존심"이라 하여 아이의 미래를 내 사회적 수준과 동일시합니다.
우리나라가 왜 사교육에 목을 매고 경쟁 교육에 앞장서는지 꿰뚫고 있는 광고라 할 수 있겠네요.
할인되는 항목은 학습지, 학원 등입니다.


마흔 일곱, 여자에게 여유란 가족에게 이바지한 보상이다.

여성에게 '보상'을 주겠다고 기뻐해야 하나요. 글쎄요. 여성으로서 저는 '가족에게 이바지'했다는 게 먼저 눈에 들어오네요. 평생 가족 돌보느라 고생했으니 이제 건강도 챙기시고, 골프도 좀 즐기세요. 이거 어찌 보면 아름다운 것 같지만, 그 전제가 무서운 겁니다. 여성에게 가족에게 이바지하라는 역할을, 규범을 내재하고 있으니까요.
가족을 돌보는 것이 절대 반대해야 하는 가치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족 중 여성, 특히 '엄마'에게만 기대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죠. 저 광고 카피는, 아마도 가족이 서로 이바지하는 관계라는 관점을 가졌다면 나올 수 있었을까요?



광고의 컨셉도 여자의 3가지 인생입니다.
Sweet 시리즈로, 여성의 인생이 달콤하다며 소비를 부추기지만,
그리고 실제로 여성들이 저러한 패턴에 맞춰서 소비를 하고 있고 저런 카드가 나오는 것을 환영할 수도 있지만...

이 사회가 어떤 규범과 가치를 여성들에게 기대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거 같아서 저는 참 씁쓸합니다.

 

* 이 글은 생활인블로거 네트워크 주권닷컴으로도 발행되었습니다.

by 땀c 2009.11.04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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