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초콜릿이다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정박미경 (레드박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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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라는 말은 가히'빨갱이'라는 말보다 더 위협적이고 불편한 단어다.
'꼴페미'들은 못생기고, 남자를 혐오하거나 무시하고, 된장녀인데다가 성적으로는 발랑 까졌다는 편견이 덧씌워진다.
그녀들이 연애를 한다? 웬만한 남자들은 그녀들의 연애 파트너를 동정할 지도 모른다. 쯧쯧..... 사내 자식이 어디 만날 여자가 없어서 페미를........

한국 사회의 '페미포비아'에 길들여져 있다면, 이 책은 아주 불편하게 다가갈지도 모른다. 평범한 연애공식에서 여성에게 대입되는 역할에 의문을 가지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가득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고민은, 굳이 페미니스트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정하지 않았을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모두 다른데, 모두 비슷하다

그녀들의 모습은 편견을 덧씌우기에는 외모도 성격도 경험도 달라 천태만상이다. 그런데 그 천태만상 속에 불쑥불쑥 내 모습이 섞여 있다. 마치, 애니어그램을 하면서 1번부터 9번까지 내 모습을 모두 발견하고 혼란스러운, 그런 느낌이랄까. 그녀들은 모두 다른데, 모두 내가 알고 있는 누군가와 또는 나와 닮아 있다.

내 모습을 그 속에서 발견한다는 건 꽤 불편한 느낌이다. 나조차 내가 그런 생각 때문에 그런 연애를 했다는 걸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권위적이고 폭력성까지 갖춘 '나쁜 남자'가 내 앞에서만 보여주는 약한 모습에 뻑이 가서, 내가 그를 밝은 곳으로 이끌어주고 있다고, 그건 나 밖에 못하는 것이라고 착각했다. 잘난 남자의 잘난 지식에 끌려서 그가 나를 보아주는 것에 우쭐했다. '디디'와 '이후'의 생각을 따라가다가 흠칫 놀라는 것은 나뿐일까.

삼십대에도 연애 상담은 필요하다

삼십대에는 모든 게 안정적일 줄 알았어, 이런 푸념에는 연애에 대한 것도 포함되어 있다.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의 삼십대들은 이십대보다 더 치열하게 연애에 대한 고민이 많은 듯하다. 삼십대 여성의 99퍼센트는 가난하고, 쌓아놓은 건 나이밖에 없고, '결혼할 거면 지금해야 한다'라는 기로에 서 있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연애다운 연애를 한 번도 못해보고, 섹스 경험도 없이 삼십대 중반을 맞은 직장 동료 언니,
연하남과 만나다가 자신의 나이만 끊임없이 자각하며 자존감이 떨어지는 언니,
소개팅을 나가면서 이제는 예전처럼 남자들에게 어필할 수 없는 건가 고민하는 친구,
결혼은 하고 싶지 않은데 사랑은 절대 필요한, 그런데 주변에는 유부남이나 아저씨밖에 없어서 선택의 폭이 줄어감을 항상 한탄하는 언니,
착한 남자보다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자신 때문에 항상 고생이라고 말하지만, 결국은 나쁜 남자를 선택하는 언니.

이 책은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그녀들을 어떤 식으로든 응원해준다. 똑똑하게 남자가 가진 것을 이용하되 그에 속하지 않는 법을 아는 초인에게는 '악녀'라는 이미지가 갖는 자유로운 이중성을 이용하면서 가부장제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이라고 북돋워준다. 연하남을 끝없이 돌보기만 하는 것에 지치고 자존감도 떨어진 지아에게는, 자기 안의 돌봄의 욕구를 인정하는 것은 '사랑스러운' 것이며, '이것만은 용납할 수 없다'는 자신만의 데드라인을 정해서 자존감을 지키라는 따뜻한 충고도 더해준다. 내 발로 잘난 남자의 여자가 되겠다고 선택해서 이용만 당했던 자신 때문에 자괴감에 빠진 이후에게는, '진보 마초'란 없으며 그는 '마초'일 뿐이라고 그녀를 위로한다.

책의 말미에, B급연애를 탈출하기 위한 9가지 충고가 곁들여져 있다. 그 중 '자기 욕망에 최선을 다라하'는 말은 최근 이별을 겪은 언니와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말이다.

'남자에게 매달리는 여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여자들에게 매우 뿌리 깊다. 남자에게 매달리는 여자는 비운의 여자이고, 그런 여자는 죽어도 되기 싫은 것이다.

쿨한 여자, 좋다. 그런데 무엇이 쿨한가?

나를 더 사랑해달라고 징징대든, 떠나가는 남자에게 울고불고 매달리든,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그래서 미련 없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진짜 쿨한 것이고 자존감을 드높이는 일이라는 걸 명심하자. 매달리는 여자에 대한 사회적 비하를 내면화하게 되면 정말 솔직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질 수 없다. 이는 자기 욕망을 향해 거침없이 질주하는 여자를 통제하려는 남성적 사회에 속는 것이다.


by 땀c 2010.03.17 1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