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선택할 때, 액션영화, 더군다나 전쟁영화는 가급적 안 고르는 편이다. <그린존>의 마케팅은 본 시리즈의 폴 그린그래스 감독과 맷 데이먼이 다시 뭉친 액션영화라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그린존>을 보자고 했을 때 "난 전쟁영화는 별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꽤 보았다.

멜로주의자도 빠져드는, 매력적인 액션

<그린존>이 액션 영화인 것은 분명해보인다. 액션영화를 즐기지 않는 나는 본 얼티메이텀을 보고 꽤 감동했는데, 특히 집과 집 사이를 통과하는 한치의 군더더기도 없는 본의 몸놀림과 절묘한 음악에 넋을 잃었었다. 액션영화에 비호감인 자도 빠져들게 만드는 폴 그린그래스의 적절한 긴박감, 과장되지 않은 날렵한 연출은 <그린존>에서도 역시 대단하다.

(개인적으로 이라크 시아파의 지도자로 나오는 알 라위의 카리스마와 영도력(!)에 완전 압도당했다! 정치적 입장에 관계 없이....어찌나 멋있던지 말이다. 그가 보여준 액션이라곤 도망가는 것 뿐이었는데! )

다큐는 아니지만, 다큐스러운

사실에 기반한 픽션이기 때문에, 결코 다큐는 아니지만 <그린존>은 꼭 다큐의 모양새를 보인다. 부시 대통령의 전쟁 종료 및 승리 선언이 실제 그대로 보여지고, 이에 환호하는 미군들의 모습은 대놓고 작정했구나, 하고 걱정이 될 정도다. (이를 두고 씨네21의 모 기자는 미국 네오콘들에게 왜 명예훼손으로 적극 대응하지 않느냐며 질타했다! 풉)

대량살상무기는 없었다, 반전 아닌 반전

이 영화에 큰 반전은 없다. 주인공이 결국 알아내게 되는 "대량살상무기는 없었다"는 것, 우리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이라크의 자유(Freedom of Iraq)'라는 거창한 명목으로 시작된 이라크 전쟁이 사실은 추악한 석유전쟁이라는 것과 미국이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거짓말은 새로울 게 없었다.

하지만, 다 알고 있었는데도 역시, 미 정부와 언론이 보여주는 비열함은 아무리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알려내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라크에는 꼭두각시 정부가 세워져있고, 수없이 죽어간 이라크 국민들의 아픔은 아직도 생생할 것이므로.



'대량살상무기 증언을 조작한 게 뭐 대수냐' 라는 미 정부와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는 언론을 향해 군인 밀러(맷 데이먼)는 외쳤다.

"그게 전쟁을 한 이유인데! 당연히 중요하지!"


이 영화의 진짜 반전은 <그린존>

사실, 대량살상무기는 없었다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긴 하지만, 포탄이 펑펑 터지는 이라크 안에 "그린존"과 같은 미국인들의 휴양지가 있다는 건 거의 알려지지 않은 듯 하다.

‘그린존’이란?
2003년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뒤 후세인이 사용하던 바그다드 궁을 개조한 미군의 특별 경계구역으로
미군 사령부 및 이라크 정부청사가 자리한 전쟁터 속 안전지대.
고급 수영장과 호화 식당, 마사지 시설, 나이트 클럽뿐 아니라 대형 헬스 클럽과 댄스 교습소가 존재 했으며
이슬람 국가에서 금지되었던 술이 허용되었다.

- DAUM 영화 정보 중

침략당한 이라크 국민들 뿐 아니라, 미 정부가 거짓말로 벌려놓은 판에 죽어라 땀 빼고 다치고 죽던 미국의 사병들도 그린존이라는 공간에서는 딴 세상 이야기였을게다. "그린존"은 이라크 한복판에서 그렇게 수많은 사람을 조롱하면서 존재하고 있었고, 그 어느 곳보다 많은 사람이 피흘리던 곳에 위치한 이름이 'green'이라는 것은 미국 정부의 뻔뻔함을 그대로 상징하고 있었다.

간단하고 당연한 명제, "이라크는 이라크 국민의 손으로"

액션영화, 전쟁영화만큼 우리 편과 적이 뚜렷이 구분되는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는 그렇게 단순한 선 긋기가 쉽지 않다. 이라크 내부의 정치세력과 역사를 잘 알지 못하면 더욱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특히 밀러 팀장의 통역을 맡게 되는 프레디의 행동은 볼수록 아리송하다. 당췌 '누구의 편'인지 알 수 없게 굴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프레디가 그 답을 풀어준다.

"이라크가 어떻게 되든 당신들이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시아파가 독재를 했든 안 했든, 이라크 내에서 정치세력이 싸우든 말든, 미국이, 그리고 프레디를 평가하려던 내가, 대신 결정할 순 없는 것이다. 꼭두각시를 꽂는 것으로, 더우기 전쟁으로는 그들에게 폐만 끼칠 뿐이라는 것이라는 피울음 섞인 항변인 것이다.

전 세계의 "일진"을 자처하며 세계 곳곳을 들쑤시는 미국을 뜨끔하게 만들도록.... 전 세계에서 <그린존>에 열광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한다.


* 이 글은 생활인 블로거 네트워크 "주권닷컴"으로도 발행했어요
by 땀c 2010.04.06 2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