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자전
감독 김대우 (2010 / 한국)
출연 김주혁, 류승범, 조여정, 오달수
상세보기

*스포일러, 대단히 많이 있습니다.

영화를 보기 직전에 들었다.
'춘향문화선양회'라는 단체가, 영화 <방자전>이 춘향전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상영중지를 요청했다 는 이야기를... 춘향은 떠난 님을 '끝까지 믿고' 기다리며 '정절'을 지켰던.... 여성들에게 욕망 억제를 강요하던 시대의 대표적 여성상 아닌가. 성명서를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춘향을 감히 모독하다니! 라는 지적은 여성들이 여전히 '춘향'처럼 살아야 한다는 주장일 뿐 아니라 심지어 예술적 상상력과 표현까지 제약하려 드는 것이기에, 어쩐지 영화 <방자전>을 무척 재밌게 봐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자를 유혹하는 기술 - 일단 만지고 나서 물어봐라?

영화는 꽤 재밌긴 했다. 마노인과 변학도를 보면서 "쟤들 땜에 미치겠다 ㅋㅋㅋㅋㅋ" 이러면서 여러 번 웃긴 했다. 영화를 곱씹어보기 전에는, 분명히, 재미를 느꼈다. 상상력도 참신하고, 고전을 비틀어보는 것 자체도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마노인과 변학도를 직접 만났다면, 내가 과연 웃을 수 있었을까나.

왠지 맹한 방자. 춘향에게 한 눈에 반했는데 도통 꼬시는 법을 몰라 마노인에게 조언을 구한다.
마노인은 무려 평생 2만명의 여자와 잔 스승을 모셨던 이다. 그 스승 못지 않은 포스를 풍기는 마노인의 비법 전수는.....

1. 몸종 향단을 만나 일단 무조건 할 말만 전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불시에 그녀의 성기를 움켜쥔다.
2. 춘향과 나란히 앉고, 뒤에 누워서 은근히 바라보다가, 돌아보면 불시에 키스를 한다.
3. 춘향이 자고 있는 방에 침입해서, 일단 만지고 난 후에 만져도 되냐고 물어보며 대답은 안 듣고 저항하건 말건 계속 만진다




방자가 그녀들을 바라보고 만지면 그녀들은 무조건 기뻐할 것인가? 왜 물어보지도 않고 좋아할 것이라고 멋대로 생각하는 것일까? 그녀들이 좋아했다면 그것은 하늘이 방자를 도운 것이지, 당연한 게 아니란 말이다.  

소위 야동에서 보여주는 시나리오, 여성을 강간하는데 강간 당하는 여성이 처음엔 저항하지만 결국엔 그녀도 기뻐한다.. 뭐 이런 남성 판타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불필요하게 친절하게 말하건데, 강간을 기뻐하는 여성이 얼마나 될 것이라 생각하는가!)

그 밖에 변학도의 변태 성욕이라던가, 향단이와 이몽룡의 난데없는 정사신과 향단이의 '내가 더 맛있지' 대사라던가... 섹스란 서로의 교감이라기보다는 남성의 성기 크기와 정력으로 대변되는 고루한 야동 판타지가 그대로 재현되는 걸 보면서...
이렇게 큰 스크린으로, 주말이라 제법 큰 돈 내고, 간만에 시간 내서 영화 보러 온 소중한 시간에 내가 야동을 보고 앉아있구나....이런 한심한 생각이 들어 슬퍼지는 것이다.

난처한 그들의 순애보

영화의 결말은, 좀 난처하다. 
춘향은 신분상승의 욕구를 선택하지만 방자에 대한 사랑은 진실이었다, 방자는 어찌어찌하다가 사고를 당해 아기처럼 되버린 춘향을 평생 돌보며 산다, 이러한 결말인데... 연출과 대사들은 분명히 나보고 감동하라고 하려는 것 같긴 한데,... 감동이 오지 않아 난처하다.

감동이란 무릇 공감을 해야 오는 것인데, 그들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에 전혀 공감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어이가 없었을 뿐이니, 감동이 올리 있을까.

돌이켜보니 <음란서생>의 결말도 '그들은 그래도 사랑했다' 라며 애절하게 끝났던 것 같다. 하지만 사랑을 논하려거든 '춘화'와 '야동'만 파는 것은 그만 헤어나오는 것이 어떨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 뿐이다.

* 이 글은 생활인 블로거 네트워크, 주권닷컴으로도 발행했습니다.

by 땀c 2010.06.12 03:48
| 1 2 3 4 5 6 7 8 ··· 1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