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자전
감독 김대우 (2010 / 한국)
출연 김주혁, 류승범, 조여정, 오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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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대단히 많이 있습니다.

영화를 보기 직전에 들었다.
'춘향문화선양회'라는 단체가, 영화 <방자전>이 춘향전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상영중지를 요청했다 는 이야기를... 춘향은 떠난 님을 '끝까지 믿고' 기다리며 '정절'을 지켰던.... 여성들에게 욕망 억제를 강요하던 시대의 대표적 여성상 아닌가. 성명서를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춘향을 감히 모독하다니! 라는 지적은 여성들이 여전히 '춘향'처럼 살아야 한다는 주장일 뿐 아니라 심지어 예술적 상상력과 표현까지 제약하려 드는 것이기에, 어쩐지 영화 <방자전>을 무척 재밌게 봐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자를 유혹하는 기술 - 일단 만지고 나서 물어봐라?

영화는 꽤 재밌긴 했다. 마노인과 변학도를 보면서 "쟤들 땜에 미치겠다 ㅋㅋㅋㅋㅋ" 이러면서 여러 번 웃긴 했다. 영화를 곱씹어보기 전에는, 분명히, 재미를 느꼈다. 상상력도 참신하고, 고전을 비틀어보는 것 자체도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마노인과 변학도를 직접 만났다면, 내가 과연 웃을 수 있었을까나.

왠지 맹한 방자. 춘향에게 한 눈에 반했는데 도통 꼬시는 법을 몰라 마노인에게 조언을 구한다.
마노인은 무려 평생 2만명의 여자와 잔 스승을 모셨던 이다. 그 스승 못지 않은 포스를 풍기는 마노인의 비법 전수는.....

1. 몸종 향단을 만나 일단 무조건 할 말만 전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불시에 그녀의 성기를 움켜쥔다.
2. 춘향과 나란히 앉고, 뒤에 누워서 은근히 바라보다가, 돌아보면 불시에 키스를 한다.
3. 춘향이 자고 있는 방에 침입해서, 일단 만지고 난 후에 만져도 되냐고 물어보며 대답은 안 듣고 저항하건 말건 계속 만진다




방자가 그녀들을 바라보고 만지면 그녀들은 무조건 기뻐할 것인가? 왜 물어보지도 않고 좋아할 것이라고 멋대로 생각하는 것일까? 그녀들이 좋아했다면 그것은 하늘이 방자를 도운 것이지, 당연한 게 아니란 말이다.  

소위 야동에서 보여주는 시나리오, 여성을 강간하는데 강간 당하는 여성이 처음엔 저항하지만 결국엔 그녀도 기뻐한다.. 뭐 이런 남성 판타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불필요하게 친절하게 말하건데, 강간을 기뻐하는 여성이 얼마나 될 것이라 생각하는가!)

그 밖에 변학도의 변태 성욕이라던가, 향단이와 이몽룡의 난데없는 정사신과 향단이의 '내가 더 맛있지' 대사라던가... 섹스란 서로의 교감이라기보다는 남성의 성기 크기와 정력으로 대변되는 고루한 야동 판타지가 그대로 재현되는 걸 보면서...
이렇게 큰 스크린으로, 주말이라 제법 큰 돈 내고, 간만에 시간 내서 영화 보러 온 소중한 시간에 내가 야동을 보고 앉아있구나....이런 한심한 생각이 들어 슬퍼지는 것이다.

난처한 그들의 순애보

영화의 결말은, 좀 난처하다. 
춘향은 신분상승의 욕구를 선택하지만 방자에 대한 사랑은 진실이었다, 방자는 어찌어찌하다가 사고를 당해 아기처럼 되버린 춘향을 평생 돌보며 산다, 이러한 결말인데... 연출과 대사들은 분명히 나보고 감동하라고 하려는 것 같긴 한데,... 감동이 오지 않아 난처하다.

감동이란 무릇 공감을 해야 오는 것인데, 그들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에 전혀 공감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어이가 없었을 뿐이니, 감동이 올리 있을까.

돌이켜보니 <음란서생>의 결말도 '그들은 그래도 사랑했다' 라며 애절하게 끝났던 것 같다. 하지만 사랑을 논하려거든 '춘화'와 '야동'만 파는 것은 그만 헤어나오는 것이 어떨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 뿐이다.

* 이 글은 생활인 블로거 네트워크, 주권닷컴으로도 발행했습니다.

by 땀c 2010.06.12 03:48

MBC 수목드라마 <개인의 취향>은 꽤 재미있다. 박개인(손예진 분)의 독특한 패션 감각과 맛깔스럽게 날려주는 대사에는 배를 잡고 웃게 되고, 전진호(이민호 분)의 까칠하면서도 부드러운 마음 씀씀이를 보면서는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다. 박개인의 변화되는 모습과 더불어 박개인과 전진호의 러브라인도 시동이 걸리기 시작하니 점점 빠져들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하지만, 이 감칠맛 나는 드라마에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장면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니,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 드라마에 빠져들 수가 없어 안타깝다.
 
성소수자에 대한 호감과 오해 사이의 아슬아슬 줄타기



전진호가 엄중히 그러지 말라고 경고했고, 스스로도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반복되는 박개인의 아웃팅. 전진호는 드라마상에서 실제로는 게이가 아니고 박개인도 아웃팅은 나쁜 것이라고 인지하고 사과를 하지만, 사실 이것이 실제 상황이라면 굉장히 끔찍한 상황이다.
 
동네 갈비집에서 "게이다"라는 것이 밝혀지고, 업무상 관계자도 그 이야길 들었다. 전진호가 실제로 게이였다면 그가 감당해야 했을 타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아웃팅은 범죄다"라는 이야기도 있는 만큼, 아웃팅이 드라마에서 그려진 것처럼 재미있는 에피소드감이 될 수는 없다.
 
최 관장(류승룡 분)이 당한 아웃팅은 더 끔찍한 것이다. 한창렬(김지석 분)은 우연히 친구를 만나 최 관장의 성정체성을 듣게 된다. 그리고 최 관장이 듣는 앞에서, 전진호에게 "너, 남자도 아니었어?"라고 몰아붙인다. 아, 끔찍해라.
 
그런데, 개인은 진호가 더럽다고 이야기하는 창렬에게 이야기한다.
 
"더러워? 진호씨가 왜 더러워. 여자든 남자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건데. 넌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해본 적도 없는 인간이잖아. 그런 니가 뭔데 진호씨를 더럽다고 얘기해."
 
한창렬로 대표되는 호모포비아들을 향한 따끔한 비판이 이 드라마가 말하고 싶은 바일 수 있다. 하지만 진호의 동료인 상준(정성화 분)이 어설프게 게이 흉내를 내며 "사실은, 저 '퍼펙트한' 남자입니다"라고 밝히고 싶어하는 장면이 신경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성소수자에 대한 호감을 만들어내는 점에서 꽤 괜찮은 드라마라고 생각되면서도, 막상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보기에 불편할 장면들은 아슬아슬하게 몰입을 방해한다. 몰입을 방해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여자 만들기"가 아니라 "당당한 사람으로 살기"였다면
 
개인은 창렬에게 "성인 여자로 느껴지지 않았다"라는 말을 듣고, 진호에게 자신을 여자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들은 남자를 애태우는 여자가 되기 위한 트레이닝에 돌입한다.
 
"여자들이 왜 약속시간에 10분씩 늦는지 알아야 진정한 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남자 앞에서 게걸스럽게 먹는 여자, 매력있을 거 같아요? 고기한테 환장한 여자도 매력 없거든요?"

 
진호는 개인에게 우아하게 걷고, 남자를 기다리게 해야 하며, 데이트할 때는 깨작거리며 먹어야 하고, 남자가 만나자고 했을 때 바로 뛰쳐나가면 안된다고 가르친다. 진호의 이야기는, 일반적인 데이트 규범이다. 데이트 규범이란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존재한다.


남성은 여성을 리드해야 하고, 능력있는 이미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규범이 있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이런 데이트 규범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은 서로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래서, 이런 데이트 규범을 정당화하고 확산하는 것으로 보이는 드라마의 장면은, 마냥 재미로만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최근 드라마의 전개를 보면, 진호는 개인에게 전형적인 여성성을 가르치면서도 개인의 진짜 모습에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진호가 개인에게 정말로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연애는, 자존심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존심을 지켜주는 거예요."

진호는 개인에게 제발 배려와 헌신만 하지 말고 자신을 사랑하라고, 자신의 주장을 가지고 당당한 사람이 되라고 이야기한다. 여성에게 순종과 헌신을 바라는 전통적인 관념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이 드라마가 정말로 말하고 싶은 바는 무엇일까? 헷갈리면서도 기대를 하게 만든다.

<개인의 취향>은 사랑스러운 등장인물에 빠져드는 전개 등으로 상당한 매력을 갖춘 드라마다. 하지만 아슬아슬 줄타기에서 발을 헛디뎌서 드라마에 호감을 가지게 된 나와 같은 시청자들을 슬프게 하지는 말아 주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생긴다.

* 이 글은 주권닷컴, 오마이뉴스로도 발행했어요.

by 땀c 2010.04.28 13:58

너는 모른다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정이현 (문학동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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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소녀, 소녀의 가족 4명, 소녀를 찾는 탐정, 소녀의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타국의 남자의 시점이 수시로 돌아가면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대한민국에서 영원히 이방인으로 취급되는 화교인 어머니, 중국에서 비밀스런 거래를 하며 큰 돈을 버는 아버지, 불안을 간직한 오빠와 언니, 어느 땅에서도 안정적인 삶을 가지지 못하는 소녀의 생물학적 아버지. 그들의 이야기는 외로운 소녀 유지에게로 모아집니다.

'사람'을 사고 팔게 하면서 결국엔 그들을 모두 불행하게 만드는 자본주의, 같은 땅에 살아가는 이방인들에 대한 폐쇄적인 시선,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서 서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각각 살아가는 안쓰러운 인생들, 그런 이야기들입니다.

읽고 나서 한동안 멍해지는, 행복을 바라게 되는 슬픈 이야기.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조지 오웰 (한겨레출판펴냄,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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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동물농장>의 조지 오웰이 소설을 집필하기 몇 년 전에 썼던 르포르타주입니다. 영국의 탄광마을에서 지냈던 기간을 그린 1부, 사회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은 2부로 나뉘어집니다.

1부는 1930년대 영국 노동자들의 삶, 특히 주택문제와 실업문제에 대해서 굉장히 자세하게 묘사됩니다.

2부는 정말 인상적인데,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는 그것을 신봉하는 이들이 사회주의를 망친다"라는 부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사회주의가 문제가 아니라 "사회주의자"가 문제인 것이라는 거죠.  대중은 이해할 수 없는 용어를 구사하며, 노동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오히려 노동자에 대한 편견을 버리지 못하며, 마르크스의 말만 교조적으로 신봉하며 육체 노동자만 진짜 노동자라고 여기고 사무직 노동자와 가난한 자영업자를 무시하면서, 그들만의 세계에서 잘난 체하는 부르주아 지식인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담겨 있습니다.

파시즘을 키우는 것은 사회주의다, 라고 합니다. 사회주의가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이데올로기로만 맴도는 사이, 파시스트들은 사회주의가 하는 이야기에 맞서 자신들을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작업을 한다는 것이죠.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에도 절묘하게 들어맞는 이야기입니다. 조지 오웰이 비판하는 그 모습이 나와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고민을 던져줍니다.

by 땀c 2010.04.20 10:38

난, 너의 손목을 본 적이 없었어. 우리가 함께 본 영화의 '지성희'(지진희)처럼. '성희'는 3년을 같이 산 부인 '영심이'의 손목에 자살을 시도한 흔적이 있다는 걸 전혀 몰랐지. 
너의 손목에 그런 흔적은 없지만, 또 다른 '손목'에 내가 알지 못하는 상처가 분명히 있을텐데.  내가 보려면 얼마든지 볼 수 있었고, 하지만 보지 못했던 그런 것들이 있을테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사람이, 그 사람의 생각과 고민을 알지 못한다는 건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 
'성희'는 '영심'과 연애를 하고 있던 중에도, 그녀에게 돈이 필요했고, 그녀가 '다단계'를 했다는 것도 전혀 알지 못했지. 그녀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리고, 난 지금 너를 얼마나 외롭게 하고 있을까. 

그녀는 애인이었던 성희에게 어떤 식으로든 표시를 했을 거야. 성희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거지. 그녀가, 솔직히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탓할 순 없는 거야. 그렇지? 사람은 보고 싶은대로 보고, 관심을 가지는만큼 보이고, 그러니까 그만큼밖에 보지 못했던 성희가 그녀에게 미안해해야 하는 거겠지. 그래서 그녀가 말했던 거잖아. 

"난 이해심이 부족했고, 당신은 이해력이 부족하더라."

밖에서는 세련되고 지적인 음악평론가지만, 편한 친구 앞에서는 누구보다 찌질하고 고집불통인 '성희'. 그는 나랑 참 닮아있는 거 같더라.  항상 '배려'를, '평등'을, '믿음'을 이야기하는 나였지만...뭔가 많이 알고 있는 것처럼 잘난 체 하는 나지만, 정작 난 굉장히 무심하고 찌질한 사람이니까 말야. 

그래서 난 오늘도 너에게 서운함을 느끼게 했나봐. 네가 나에게 했던 말, 표정, 행동들은 6년을 함께 했던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던 것들인데, 난 다른 사람들이 내려주는 해석에 흔들려버리고 말았지. 너는 왜 내게 믿음을 주지 않냐고, 왜 표현하지 않느냐고 너의 표현들을 모두 무시해버렸어. 그래, 정말 이해력이 딸리나봐 나는. 



우리가 함께 본 이 영화에서,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장면이 있었잖아. 남자 셋이 모여 집에 도배를 하며 가족을 기다리는 모습. 여자 셋이 모여 생애 처음으로 자유로운 여행을 하는 모습. 

남자 셋은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을 위해 노동을 하는 모습이 처음으로 그들을 편안하게 만드는 거 같아 좋아보였고,
여자 셋은 힘들게 살아온 그녀들이 처음으로 자기 자신들을 위해 선물을 해주는 모습이 좋아보였지. 

우리, 그렇게 서로와 자신을 위한 선물을 하며 살아가보자. 그들은 결국 헤어졌고, 미안해했고, "너를 잘 몰라서 미안했어"라고 사과했지만..  부족한 이해심과 이해력을 채워가며 우리는 같이 나란히 살아가보자. 서로의 '손목'을 들여다보면서, 기억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보자. 함께해줘서, 정말 고마워.. 
by 땀c 2010.04.19 21:30

영화를 선택할 때, 액션영화, 더군다나 전쟁영화는 가급적 안 고르는 편이다. <그린존>의 마케팅은 본 시리즈의 폴 그린그래스 감독과 맷 데이먼이 다시 뭉친 액션영화라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그린존>을 보자고 했을 때 "난 전쟁영화는 별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꽤 보았다.

멜로주의자도 빠져드는, 매력적인 액션

<그린존>이 액션 영화인 것은 분명해보인다. 액션영화를 즐기지 않는 나는 본 얼티메이텀을 보고 꽤 감동했는데, 특히 집과 집 사이를 통과하는 한치의 군더더기도 없는 본의 몸놀림과 절묘한 음악에 넋을 잃었었다. 액션영화에 비호감인 자도 빠져들게 만드는 폴 그린그래스의 적절한 긴박감, 과장되지 않은 날렵한 연출은 <그린존>에서도 역시 대단하다.

(개인적으로 이라크 시아파의 지도자로 나오는 알 라위의 카리스마와 영도력(!)에 완전 압도당했다! 정치적 입장에 관계 없이....어찌나 멋있던지 말이다. 그가 보여준 액션이라곤 도망가는 것 뿐이었는데! )

다큐는 아니지만, 다큐스러운

사실에 기반한 픽션이기 때문에, 결코 다큐는 아니지만 <그린존>은 꼭 다큐의 모양새를 보인다. 부시 대통령의 전쟁 종료 및 승리 선언이 실제 그대로 보여지고, 이에 환호하는 미군들의 모습은 대놓고 작정했구나, 하고 걱정이 될 정도다. (이를 두고 씨네21의 모 기자는 미국 네오콘들에게 왜 명예훼손으로 적극 대응하지 않느냐며 질타했다! 풉)

대량살상무기는 없었다, 반전 아닌 반전

이 영화에 큰 반전은 없다. 주인공이 결국 알아내게 되는 "대량살상무기는 없었다"는 것, 우리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이라크의 자유(Freedom of Iraq)'라는 거창한 명목으로 시작된 이라크 전쟁이 사실은 추악한 석유전쟁이라는 것과 미국이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거짓말은 새로울 게 없었다.

하지만, 다 알고 있었는데도 역시, 미 정부와 언론이 보여주는 비열함은 아무리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알려내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라크에는 꼭두각시 정부가 세워져있고, 수없이 죽어간 이라크 국민들의 아픔은 아직도 생생할 것이므로.



'대량살상무기 증언을 조작한 게 뭐 대수냐' 라는 미 정부와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는 언론을 향해 군인 밀러(맷 데이먼)는 외쳤다.

"그게 전쟁을 한 이유인데! 당연히 중요하지!"


이 영화의 진짜 반전은 <그린존>

사실, 대량살상무기는 없었다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긴 하지만, 포탄이 펑펑 터지는 이라크 안에 "그린존"과 같은 미국인들의 휴양지가 있다는 건 거의 알려지지 않은 듯 하다.

‘그린존’이란?
2003년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뒤 후세인이 사용하던 바그다드 궁을 개조한 미군의 특별 경계구역으로
미군 사령부 및 이라크 정부청사가 자리한 전쟁터 속 안전지대.
고급 수영장과 호화 식당, 마사지 시설, 나이트 클럽뿐 아니라 대형 헬스 클럽과 댄스 교습소가 존재 했으며
이슬람 국가에서 금지되었던 술이 허용되었다.

- DAUM 영화 정보 중

침략당한 이라크 국민들 뿐 아니라, 미 정부가 거짓말로 벌려놓은 판에 죽어라 땀 빼고 다치고 죽던 미국의 사병들도 그린존이라는 공간에서는 딴 세상 이야기였을게다. "그린존"은 이라크 한복판에서 그렇게 수많은 사람을 조롱하면서 존재하고 있었고, 그 어느 곳보다 많은 사람이 피흘리던 곳에 위치한 이름이 'green'이라는 것은 미국 정부의 뻔뻔함을 그대로 상징하고 있었다.

간단하고 당연한 명제, "이라크는 이라크 국민의 손으로"

액션영화, 전쟁영화만큼 우리 편과 적이 뚜렷이 구분되는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는 그렇게 단순한 선 긋기가 쉽지 않다. 이라크 내부의 정치세력과 역사를 잘 알지 못하면 더욱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특히 밀러 팀장의 통역을 맡게 되는 프레디의 행동은 볼수록 아리송하다. 당췌 '누구의 편'인지 알 수 없게 굴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프레디가 그 답을 풀어준다.

"이라크가 어떻게 되든 당신들이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시아파가 독재를 했든 안 했든, 이라크 내에서 정치세력이 싸우든 말든, 미국이, 그리고 프레디를 평가하려던 내가, 대신 결정할 순 없는 것이다. 꼭두각시를 꽂는 것으로, 더우기 전쟁으로는 그들에게 폐만 끼칠 뿐이라는 것이라는 피울음 섞인 항변인 것이다.

전 세계의 "일진"을 자처하며 세계 곳곳을 들쑤시는 미국을 뜨끔하게 만들도록.... 전 세계에서 <그린존>에 열광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한다.


* 이 글은 생활인 블로거 네트워크 "주권닷컴"으로도 발행했어요
by 땀c 2010.04.06 23:34
우아한 거짓말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김려령 (창비,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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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첫 머리는 중 1 소녀의 죽음이다.

착하고 밝은 천지가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도 버거운데...
천지가 그동안 혼자 감내하며 속으로만 쌓아가던 이야기들은 더 읽기가 힘들다.

"완득이" 작가의 발랄하고 개성있는 문체를 기대하고 읽기 시작했다. 재치있는 대사들은 여전했지만, 천지의 상처가 조금씩 드러날 때마다 스산한 마음이 들어 책장을 넘기는 것이 두려웠다. 

그 두려움은 두 종류였다. 천지와 같은 내 안의 상처가 건드려지는 두려움. 그리고 내가 천지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과 같았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전혀 다른 두 개의 두려움이 사건이 진행될 때마다 번갈아 다가오니 책을 읽는 것은 꽤 힘든 일이었다. 다 읽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는데도, 잔상은 오래 남았다.

책을 읽고 나서 며칠 후, 당원 성평등 교육에서 '폭력의 피해, 가해 경험'을 체크해보았다. 나는 피해경험이 더 많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가해 경험도 만만치 않게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화연'과 '미라'가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나 자신에게 우아하게 거짓말을 하며 살고 있었던 게다. 사람의 뇌란 참 이기적이어서, 내가 저질렀던 가해의 경험을 마치 없던 일처럼 만드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스스로 숨긴 가해의 경험을 깨닫는 것
그리고 피해의 경험에 안부를 묻는 것....
이 성장소설이 해내는 역할일 듯 하다.

혹시 내 어렸을 적과 같은 아픔을 지금 품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뜨겁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미리 생을 내려놓지 말라고, 생명 다할 때까지 살라고.
그리고 진심을 담아 안부를 묻습니다.

"잘 지내고 계시지요?"

- 작가의 말 중에서

by 땀c 2010.03.21 22:14

남자는 초콜릿이다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정박미경 (레드박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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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라는 말은 가히'빨갱이'라는 말보다 더 위협적이고 불편한 단어다.
'꼴페미'들은 못생기고, 남자를 혐오하거나 무시하고, 된장녀인데다가 성적으로는 발랑 까졌다는 편견이 덧씌워진다.
그녀들이 연애를 한다? 웬만한 남자들은 그녀들의 연애 파트너를 동정할 지도 모른다. 쯧쯧..... 사내 자식이 어디 만날 여자가 없어서 페미를........

한국 사회의 '페미포비아'에 길들여져 있다면, 이 책은 아주 불편하게 다가갈지도 모른다. 평범한 연애공식에서 여성에게 대입되는 역할에 의문을 가지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가득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고민은, 굳이 페미니스트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정하지 않았을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모두 다른데, 모두 비슷하다

그녀들의 모습은 편견을 덧씌우기에는 외모도 성격도 경험도 달라 천태만상이다. 그런데 그 천태만상 속에 불쑥불쑥 내 모습이 섞여 있다. 마치, 애니어그램을 하면서 1번부터 9번까지 내 모습을 모두 발견하고 혼란스러운, 그런 느낌이랄까. 그녀들은 모두 다른데, 모두 내가 알고 있는 누군가와 또는 나와 닮아 있다.

내 모습을 그 속에서 발견한다는 건 꽤 불편한 느낌이다. 나조차 내가 그런 생각 때문에 그런 연애를 했다는 걸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권위적이고 폭력성까지 갖춘 '나쁜 남자'가 내 앞에서만 보여주는 약한 모습에 뻑이 가서, 내가 그를 밝은 곳으로 이끌어주고 있다고, 그건 나 밖에 못하는 것이라고 착각했다. 잘난 남자의 잘난 지식에 끌려서 그가 나를 보아주는 것에 우쭐했다. '디디'와 '이후'의 생각을 따라가다가 흠칫 놀라는 것은 나뿐일까.

삼십대에도 연애 상담은 필요하다

삼십대에는 모든 게 안정적일 줄 알았어, 이런 푸념에는 연애에 대한 것도 포함되어 있다.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의 삼십대들은 이십대보다 더 치열하게 연애에 대한 고민이 많은 듯하다. 삼십대 여성의 99퍼센트는 가난하고, 쌓아놓은 건 나이밖에 없고, '결혼할 거면 지금해야 한다'라는 기로에 서 있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연애다운 연애를 한 번도 못해보고, 섹스 경험도 없이 삼십대 중반을 맞은 직장 동료 언니,
연하남과 만나다가 자신의 나이만 끊임없이 자각하며 자존감이 떨어지는 언니,
소개팅을 나가면서 이제는 예전처럼 남자들에게 어필할 수 없는 건가 고민하는 친구,
결혼은 하고 싶지 않은데 사랑은 절대 필요한, 그런데 주변에는 유부남이나 아저씨밖에 없어서 선택의 폭이 줄어감을 항상 한탄하는 언니,
착한 남자보다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자신 때문에 항상 고생이라고 말하지만, 결국은 나쁜 남자를 선택하는 언니.

이 책은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그녀들을 어떤 식으로든 응원해준다. 똑똑하게 남자가 가진 것을 이용하되 그에 속하지 않는 법을 아는 초인에게는 '악녀'라는 이미지가 갖는 자유로운 이중성을 이용하면서 가부장제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이라고 북돋워준다. 연하남을 끝없이 돌보기만 하는 것에 지치고 자존감도 떨어진 지아에게는, 자기 안의 돌봄의 욕구를 인정하는 것은 '사랑스러운' 것이며, '이것만은 용납할 수 없다'는 자신만의 데드라인을 정해서 자존감을 지키라는 따뜻한 충고도 더해준다. 내 발로 잘난 남자의 여자가 되겠다고 선택해서 이용만 당했던 자신 때문에 자괴감에 빠진 이후에게는, '진보 마초'란 없으며 그는 '마초'일 뿐이라고 그녀를 위로한다.

책의 말미에, B급연애를 탈출하기 위한 9가지 충고가 곁들여져 있다. 그 중 '자기 욕망에 최선을 다라하'는 말은 최근 이별을 겪은 언니와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말이다.

'남자에게 매달리는 여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여자들에게 매우 뿌리 깊다. 남자에게 매달리는 여자는 비운의 여자이고, 그런 여자는 죽어도 되기 싫은 것이다.

쿨한 여자, 좋다. 그런데 무엇이 쿨한가?

나를 더 사랑해달라고 징징대든, 떠나가는 남자에게 울고불고 매달리든,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그래서 미련 없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진짜 쿨한 것이고 자존감을 드높이는 일이라는 걸 명심하자. 매달리는 여자에 대한 사회적 비하를 내면화하게 되면 정말 솔직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질 수 없다. 이는 자기 욕망을 향해 거침없이 질주하는 여자를 통제하려는 남성적 사회에 속는 것이다.


by 땀c 2010.03.17 19:28


구스 반 산트 감독, 숀 펜 주연의 2008년작 <밀크>가 드디어 우리나라에서 개봉했습니다.

성소수자 최초로 미국 시의원이 되었던, 샌프란시스코의 게이 인권운동가이자 정치인, <하비 밀크>의 삶을 그린 영화입니다.

영화는 과장하지 않고, 하비 밀크라는 평범했던 직장인이 나이 40에 인권운동과 정치를 시작한 마지막 8년을, 담담하고 차분하게 보여줍니다.


시작은, '나 여기 있다'고 목소리를 내는 것

그 시대, 그 나라에서도 공권력은 주류들만을 보호하나 봅니다. 게이들의 주점을 때려부수며 술을 마시는 그들을 '진압'합니다. 그들이 존재하는 것을 '죄'로 여깁니다.

동성애자들은 길을 걷다가 린치를 당하며, 어느 날 하비 밀크의 친구도 살해당합니다. 친구가 죽어가던 순간 마지막으로 들은 말은 '호모 새끼' 였고, 곁에 있다가 이것을 목격한 그의 애인은 '매춘 상대 손님' 이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유쾌한 평범한 남자, 공화당 지지자였던 하비 밀크.
'게이'라는 것 말고는 평범하기 그지없었던 그가 깨달은 것은, "나 여기 있다"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정치 활동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흑인을 위한 대변인들이 있듯이, 우리도 정치인이 있어야 해. "나 여기 있다"고 말하면 주목 받을 수 있을 거야.
이렇게 말하며 시의원 출마를 결심합니다.

우리도 당신들과 같은 권리를 가진 사람이다, 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시작한 정치는, 그 생명력이 다를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것은 자신의 문제로부터 절박함을 가지고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연대로 시작하여, 연대로 이루어낸다

하비 밀크와 그 친구들은, 노동조합과 불매운동에 연대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맥주 불매운동에 적극 참여한 동성애자들 덕분에 불매운동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비 밀크는 성소수자들만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소외된 시민들을 위한 정책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노인 복지, 교육, 소외된 계층을 대변하겠다는 약속을 했고, 이것은 그가 시의원이 되고 난 후에도 일관된 정치관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면서도 그가 잃지 않았던 것은, 자신은 "게이"라는 정체성이었습니다. 게이들을 위한 정치인이 되고 싶었고, 자신의 정체성을 희석시키지 않고 분명하게 세상을 향해 드러내겠다는 의지를 잃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가 세 번의 낙선을 거쳐 결국 당선하게 된 것은, 끊임 없는 연대와 자신이 대변하겠다고 결심한 성소수자들을 향한 애정 때문이었습니다.



정치란,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
그리고 그들에게 권력을 주는 것

하비 밀크가 '이슈 파이팅'을 잘 하는 것에 대해, 동료 시의원이었던 댄 화이트는 적의를 드러내며 자신에게도 '이슈'가 있다고 강변합니다. 그러나 하비는 자신이 하는 정치는 단지 이슈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단지 이슈를 넘어, '우리에겐 목숨이 걸린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비 밀크가 계속되는 실패와 갈등 속에서도 계속해서 정치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한 소년과의 전화 통화도 있었습니다.
동성애자들을 삶터에서 끌어내 정신병원으로 몰아넣는 '아니타'법이 통과된 순간 한 장애인 소년이 절망 속에서 하비 밀크에게 전화를 걸었고, 밀크는 이길 수 있을까 하는 불확실 속에서도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계속 나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비 밀크가 연설을 시작하면서 항상 했던 말은, "여러분을 동지로 모십니다." 였고, 투표를 호소하면서 했던 말은 그 동안 소외받아온 "당신들을 뽑고 싶습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정치인 한 사람에게 권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에게 권력을 주겠다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암살되기 전 그가 남긴 유서의 마지막 구절은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명대사였습니다.

"정치란 개인의 이익이나 명예를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살게 하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희망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나도 압니다.
그러나 희망 없는 삶은 살아갈 가치를 잃습니다.
그러니 당신, 당신, 당신도,
그들에게 희망을 주십시오."


하비 밀크의 마지막 말은 그대로 실현되었습니다. 정치나 운동에는 전혀 관심 없던 소년 클리브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안온한 삶을 원했던 스콧도, 그의 바람대로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실천을 이어가고 있다는 영화의 엔딩은 어쩌면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일지도.

자신의 부나 명예와 관계 없이, 자신의 정치로 누군가를 '살게 하는' 정치인이, 대한민국에 아주 많아졌으면 합니다.  앞으로의 모든 선거에서 우리는 <밀크>와 같은 후보를 눈 크게 뜨고 찾아서, 우리 스스로를 권력의 주인으로 만들었으면 합니다.

* 이 글은 생활인 블로거들의 네트워크 "주권닷컴"으로도 발행했습니다.
 
by 땀c 2010.03.02 22:19

'추노'와 동시간대에 방영중이라 상대적으로 덜 관심을 받고 있지만,
SBS 드라마 '산부인과'는 의학정보, 감동, 성보수주의를 향한 따끔한 지적까지 여러가지 매력적인 면모를 갖춘 드라마입니다.


의사들은 환자의 복지를 걱정해주지 않아요

개인적으로 산부인과의 주인공 '서혜영 과장'(장서희 분)에게 푹 빠지게 된 계기는 성지루씨가 등장한 4화였습니다.

담담하게 사람 좋은 교통경찰로 분한 성지루씨는 임신중이던 부인이 사고를 당해 뇌사상태에 빠졌고, 뇌사상태를 일주일간 유지해야 뱃 속의 아이를 살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는 경제적, 물리적으로 많은 것을 감내해야 합니다. 아이를 살릴 것인가는 그가 결정해야 하구요.

의사들이 모여 회의를 합니다. 특이한 케이스이기 때문에, 수술을 하면 의사 개인의 경력과 병원의 명성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으로 초점이 맞춰지고, 그래서 보호자(성지루)를 설득해야 한다고 결론이 나죠. 이 때 서혜영 과장은 자신이 수술을 하겠다고 합니다. 다른 의사들은 그녀가 경력을 위해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성지루에게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려줍니다.

"부인의 생명유지비용과 아이를 낳은 후 인큐베이터 장치 비용까지 합치면 수천만원이 들겁니다. 아이는 장애가 남을지도 몰라요. 이 나라 복지제도는 왜 이모양일까, 이런 거 의사들이 걱정해주지 않아요. 이런 건, 본인이 결정하셔야 하는 겁니다."

너무나 냉철해보이는 말이지만, 이게 현실이니까요. 앞으로 펼쳐질 고난한 삶은 성지루와 그 아기의 몫인 것을 알기 때문에, 그녀는 무작정 생명이 소중하다며 수술할 것을 설득하지 않았고, 그가 후회 없이, 제대로 준비를 하고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입니다.


콘돔 끼우는 법은 제대로 알아야 해요

그런 서혜영 과장이 또 사고(?)를 쳤습니다.

우연히 고등학교에 성교육을 간 그녀는, 순결교육 같은 것은 해줄 사람이 많다며, 거침없이 콘돔과 피임약을 꺼냅니다. 콘돔을 끼우는 법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아이들 앞에서 시연을 해보입니다.

"콘돔은 정액 주머니 부분의 바람을 반드시 빼줘야 해요. 링 부분을 바깥으로 해서 천천히 내려주고요. 손톱이나 반지에도 긁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요."



그녀의 성교육은  '더블더치'에서 완성이 됩니다.

"더치페이가 뭔지 알죠? 네덜란드 청소년들은 '더블더치'라고 해서 남학생들은 콘돔, 여학생들은 피임약을 복용하도록 각각 교육받고 있어요."

원치 않는 임신을 하면 가장 힘든 당사자는 여학생들이기 때문에,  남자 친구에게만 피임을 맡기지 말고 피임약을 적극적으로 복용해야 한다고 십대 소녀들을 향해 말합니다. 남자들도 당연히 콘돔을 써야 하는 거구요. 피임은 실패할 확률이 있기 때문에 파트너가 동시에 피임에 책임을 지는 '더블 더치'를 해야 한다라는 메시지, 멋지지 않나요?

이 때 선생님은 안절부절 못하고, 애들이잖아요~아직 어린데~대놓고 사고 치라고 하시면 어떻게 해요~라며 만류합니다. 서혜영 과장 왈, "아이들이니까요. 이미 성에 노출되어 있다면, 최대한 안전 교육 해야죠. 이런 거 알려준다고 사고안 칠 애들이 치진 않아요. "

임신했을 경우에는 반드시 부모님에게 빠른 시일 내에 이야기하고, 그게 어려우면 병원이나 시설의 도움이라도 받으라는 당부까지 잊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 교실 안에도 임신한 아이가 있었거든요.

성교육을 하고 돌아온 그녀는 "깽판"이니, "또 사고쳤다"느니 하는 말을 듣습니다. 하지만, 이게 정말 깽판일까요?

성교육, 도대체 언제 받아야 하는 건데요?



독일에서 청소년들에게 성에 관한 지침서로 각광받은 "섹스북"(귄터 아멘트)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피임, 자위, 동성애, 노인의 성, 아이들의 성, 결혼, 서로를 존중하는 성관계 등에 대해서 반드시 생각해봐야 하는 내용들이담겨있는, 주옥같은 책이죠.

우리나라에서는 이 책을 "유해매체물"이라고 부르고 있네요. 이 책을 검색하면 19세 미만은 "보호"하기 위해 접근할 수 없어서 성인인증을 받아야 합니다.






성인인증 따위야 가볍게 엄마아빠누나형 아이디로 들어갈 수 있는 아이들에게 이러한 벽은 무의미할 뿐더러, SEX, 몸과 관련되어 있으면 무조건 검열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입니다. 이렇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차단은, 도움이 되는 올바른 성 가치관으로 구성되어 있는 '섹스북'마저 아이들로부터 차단시켜서 결국 아이들은 어둠의 경로로 성을 배울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어른이 되면 저절로 올바른 성적 가치관이 형성되나요? 청소년 시절, 제대로 성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그대로 어른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어른일지라도, 일방적인 성관계를 하거나 피임법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어른들이 얼마나 많은 가요! ('질외사정' 이나 '임신주기법'은 결코 피임법이 될 수 없습니다.)




이 날 에피소드에서는, 소녀가 아기를 화장실에서 낳아서 유기를 한 사건도 함께 보여졌습니다. 그 아이는 두려웠겠죠. 짐을 떨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만 했겠죠. 그 아이가 그런 선택을 하기까지, 어른들은 무엇을 했던가요. 무조건 섹스로부터 차단만 시키면, 모두가 섹스를 하지 않으면 이런 일들이 생기지 않는 걸까요?

이런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산부인과라는 드라마는 가히 혁명적이라고 불러도 될 듯 합니다. 적어도 오늘, 서혜영 과장 덕분에 청소년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피임법을 제대로 알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더불어, 성에 대한 관점도 이제는 좀 바뀌어야 하지 않겠나, 싶어요. 모두가 쉬쉬, 하지만, 모두에게 일어나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공개적인 소통이 더욱 중요합니다.

*이 글은 생활인블로거들의 네트워크 "주권닷컴" 으로도 발행했어요


 

by 땀c 2010.02.26 00:52

*<디어존> 시사회 관람.. 후 스포일러 잔뜩 남깁니다. '비추'이니 스포일러는 별 신경 안쓰입니다만.

박스오피스 1위라는 사랑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했더니...

'애절한 사랑'을 만들기 위한 코드만 난무하고 있었다.

단 2주만에 사랑에 빠진다.
남자는 군대에 간다.
때마침 전쟁이 터진다.
2주간의 사랑이 수 년으로 길어진다.
그들은 편지로만 사랑을 나눌 수밖에 없다.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은 여자는 아파서 돌봐줄 수 밖에 없는 이웃과 결혼을 결정했다.
하지만 여자는 남자를 여전히 사랑한다.
몇 년 후 재회한 그들은 운명의 장난에 한없이 슬플 뿐.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러 그들은 다시 만나게 된다.

2주만에 운명의 사랑에 빠진다는 비현실성과...약자를 향한 희생정신이 넘친다지만 '운명의 사랑'까지 버려버리는 범상치 않은 결정...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고 치자. 아름다고 훌륭하기는 하다.
그러나 공감은 어렵다..

사바나, 희생만 하는 삶이 행복하니?

사바나는 따뜻하고 참 괜찮은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과 소통이 어려운 이웃집 앨런과 존의 아버지를, 그들의 가족보다 더 잘 보살펴준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까지 잠식해버린 그녀의 인생이 그녀는 정말 행복했을까. 남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서 그녀 스스로 한 선택이었지만, 그녀는 절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존과 사랑에 빠진 것까지, 그녀가 뭔가 결핍된 사람에게 더 애정을 느끼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존은 실제로 아픔이 많고 벽에 둘러싸인 사람이었다.

사실, 이 부분에 좀 의문이 남는 것이... 영화는 주로 존의 시점에서 진행되는데, 존과 같이 지극히 남성적이고 거친, 상처가 많은 남자가 한없이 포근한 성녀와 같고 아름답기까지 한 그녀를 만나 비로소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뭐 이런 걸 함축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전쟁은 현실, 그들의 사랑은 판타지

미국이 원인을 제공해 벌어진 9. 11. 테러, 미국이 시작한 침략 전쟁인 이라크 전쟁의 정치적 배경이 이 영화에서는 무엇이었을까. 평범한 사람들에겐 정치적 의미가 무엇이든간에 그들의 사랑에 장애물 뿐이었을지는 몰라도, 그것이 그렇게 간단하게 무시되는 것은 불편하다.

9. 11. 테러 이후 스스로 "복무기간을 연장하겠습니다!" 라고 외치며 일어서는 U.S.ARMY의 미국 젊은이들의 모습은 참으로 갑갑하다. 그런데 존이 차마 바로 자원하지 못하고 갈등했던 것도, 사랑 때문이었지 전쟁에 대한 성찰은 손톱만큼도 없었고, 오히려 조국(미국의 침략전쟁)을 위해 그는 사랑을 뒷전에 배치했다.

솔직히 이 대목에서도 그들의 사랑을 응원해줄 수 없었기 때문에, 영화는 초반부터 몰입을 너무나 떨어뜨려버렸다.

그나마 건진 것들

그나마 이 영화에서 볼만한 장면은, 쓰러진 아버지 앞에서 존이 자신은 미국의 동전이었다며, 구멍이 난 불량화폐인 아버지와 자신을 안쓰러이 여기는 모습일 것이다. 아버지의 주름진 손이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아들을 위로하는 장면은 맘이 아린다. (그러나 아주 미미하게 지나가는 장면인 것. 아버지가 왜 병실에서 밀려나와 복도에 있는지 너무 궁금했는데, 끝내 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건진 것은, 아만다 사이프리드, 그녀는 너무나 예쁘다는 것.....
맘마미아에서 볼 때보다 더 친숙하고 자연스러워 몰입하게 되는 그녀였다.



500일의 썸머 같은 현실적인 로맨스가 훨씬 좋은 건, 내가 나이가 들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이 글은 생활인블로거들의 네트워크 <주권닷컴>으로도 발행했어요.
by 땀c 2010.02.2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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