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5일(한국시간), 프로골퍼 양용은 선수가 다음과 같은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미 골프 다이제스트의 덴젠킨스 기자가 금요일 자신의 트위터에 " 양용은 잘치네, 어제 밥 내 중국음식 배달해 줬는데" 라고 해서 지금 미국 아시아 사회에서 인종차별에 대한 논쟁이 한창입니다. 기분이 매우 불쾌한데 코리페빈(라이더 컵 주장) 부인이 아시아 계여서 저보다 먼저 많은 언론인들에게 댄젠킨스 보이콧 운동을 하고 있네요. 언제쯤 이런 소수 인종에 대한 차별과 멸시적인 발언이 없어질지...

양용은 선수는 "미국 아시아계 단체 또는 시민단체에서, 언론의 인종차별적인 발언에 대해 함께 싸웠으면 좋겠다" 라고 덧붙였다. 양용은 선수의 적극적인 반응으로, 댄 젠키스 기자는 트위터의 내용을 삭제하고 골프 다이제스트는 "양용은(Y.E. Yang)의 이름이 중국음식 체인점인 P.F. Chang과 유사해서 농담으로 던진 말이었다"라고 해명을 했다. 그다지 해명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아시아계는 모두 비슷해보인다는 그들의 속내를 더 드러내는 듯 하다.

양용은 선수가 소수 인종과 시민단체의 연대를 호소할만큼, 이것은 양용은 선수 자신만 겪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특히 골프는, 오거스타내셔널 골프장이 흑인과 여성의 출입을 제한한 것 때문에 올림픽 종목에서 탈락한 전적이 있는 만큼 폐쇄적이다. 인종에 대한 멸시 섞인 농담과 차별은, 미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아시아계 시민들이, 그리고 세계 무대에서 자신의 실력으로 평가받지 못하고 편견에 시달리는 이들이 늘상 겪는 문제이다. 늘상 반복되던 문제에 참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양용은 선수의 모습은 그래서 소중하다.

그런데, 양용은 선수의 모습을 보는 순간 차별받는 아시아계로서 함께 분노했던 우리들은, 양용은 선수가 비판하는 "인종차별주의자"의 모습에서 자유로울까?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차별로 피해받기 보다는 차별을 하는 쪽에 더 가깝지 않을까.

정이현 소설 "너는 모른다"의 한 장면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어머니가 화교인 소녀는, 동네 아이들로부터 "너네 나라 가서 짜장면이나 먹어라, 짱깨야"라는 모욕을 받는다. 소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전화를 하며 "아무튼 골 때리는 짱깨놈들이라니까" 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짱깨"가 무엇을 뜻하는지 묻는다. 그러자, 소녀의 아버지는 누가 그랬냐며 몹시 흥분한다. "짱깨"를 무시하던 소녀의 아버지는, 자신의 부인과 딸이 "짱깨"라고 무시를 당하자 화를 낸다.

한국 사회에서 화교는 중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이방인이다. 재일교포ㆍ재미교포들이 미국에서 겪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재일교포와 재미교포에게는 감정이입을 잘 하면서, 같은 땅에서 살아가는 화교와 유색인종인 외국인들에게는 호의적이지 않다. 어쩌면 우리는 양용은 선수가 겪었던 일보다 더한 것들을 저지르고 있지 않나.


영화 '반두비'에서, 방글라데시에서 온 카림은 자국에서는 영어 실력도 뛰어난 대학생이고 성실함까지 갖췄지만, 한국에서 날라리로 살아가는 백인 영어회화 강사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받으며 고단한 삶을 살아간다. 카림이 옷을 사면, 옷가게 직원은 그와 손이 닿을세라 거스름돈을 바닥에 밀어준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그의 옆에 앉는 사람도 드물다.


카림은 피부색이 어둡기 때문에, 가난한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무시해도 좋은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 심지어 때로는 범죄자 취급을 받기도 한다. 그가 하지도 않은 일 때문에, 타인이 만들어놓은 배타적인 편견 때문에 그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의 범주가 적다.

양용은 선수는 자신이 가진 겉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하는 일을 토대로 평가받기를 원했을 것이다. 양용은 선수가 바라는 것이 옳다면, 카림이 우리에게 같은 것을 바라는 것도 옳다. 댄 젠킨스 기자가 틀렸다면, 우리가 카림에게 덧씌운 편견과 차별도 틀렸다.

양용은 선수는 그나마 인종차별에 당당하게 문제제기라도 가능하고, 그 문제제기가 존중받는다. 이 땅에서는 아직 그것도 요원하다. 우리가 진짜 비판해야 할 것은, 우리 내부에 있는 것은 아닐까.


by 땀c 2010.04.17 20:41

그 빛나던 지식의 별들은 어디로 갔을까.

지난 9일 방송된 KBS2 <스펀지 2.0>에서는 "가슴이 커지는 벨소리"가 소개되었다. 일본의 심리학자 히데토 토마베치라는 사람이 발명한 것인데,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뇌에서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젖샘이 발달, 가슴이 커진다는 것이다.

실험에 참가한 연예인이 하루 20회씩 '가슴을 생각하며' 2주간 이 벨소리를 듣자 가슴이 0.2cm 커졌단다. 방송 후 인터넷은 뜨겁게 달아올랐고, 발빠른 음원회사는 기존에 나와있던 아기 울음 벨소리를 '가슴이 커지는 벨소리'로 이름을 바꿔서 내보냈다.

"가슴이 커지는 벨소리가 있대!"

"정말? 들어봐야겠는 걸?"

이렇게 가볍게 웃으면서 넘어갈 수도 있다. '예뻐질 수 있으면 좋은 거 아냐?'라며 '좋은 게 좋은 거지'하는 심정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 찝찝함은 무엇일까.

실험에 참가한 연예인 김지혜는 농담처럼 말했다. 자신은 가슴이 작아도 그다지 마음 고생이 심하지 않았는데 "남편이 마음 고생이 심했다"고.

자고로, 농담이 재미있는 이유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어서다. 여성들의 가슴을 향한 열망이 어디로부터 시작되는가, 그 핵심을 찌르는 말이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욕망이 나를 망친다



<스펀지 2.0>에서는 대한민국 여성들의 가슴 사이즈가 평균 75A~80A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방송에서는 이것이 마치 "안타까운 현실"인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현실"인 것이며, 대한민국 여성들의 "자연스러움"일 뿐이다.

"자연스러움"을 거부하는 것은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한다. 영화 <색, 계>가 상영 당시 여러 사람을 놀라게 했던 것 중 하나는, 주인공 탕웨이가 정사신에서 당당히 보여주었던 소위 '겨털(겨드랑이 털)'이었다. 탕웨이의 '겨털' 때문에 정사신에 전혀 몰입이 안 되었으며, 성적 감흥을 못 느꼈다는 영화 감상 후 뒷 이야기를 종종 볼 수 있다.

몸에서 나는 털은 다 이유가 있어서 나는 것일 텐데, 특히 땀이 많이 나는 부위여서 중요한 기능을 하는 겨드랑이 털을, 우리는 혐오한다. 여성들은 데이트 전, 옷 입기 전, 점검하고 삭제한다. '외모' 혹은 '사회의 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만'하는 이런 일들은 귀찮을 뿐 아니라 피부에도 몹쓸 짓이다.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이란, 개인 한 사람이 벗어나기 매우 힘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위력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고,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을 향한 개인의 노력은 "열정"인 것으로 칭찬받는다. 그런 '열정'이 없으면, 그 사람은 암묵적 또는 가시적으로 도태된다. 이 현상은 특히 가진 것 없는 사람일수록 속박하고, 그 기준도 매우 충족하기 힘들다. 가슴은 키워야 하지만, 살은 빼야 하는 수많은 여성들은 알고 있다. 두 가지를 동시에 충족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속박은 대부분 "자기 검열"의 형태로 다가오기 때문에, 우리는 대부분 그것이 자신의 선택인 것으로 착각한다. '가슴이 커지는 벨소리'를 하루에 20회씩 시간을 투자해서라도 듣고 싶어지는 것은, 정말 나의 욕망일까.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욕망에 내가 맞춰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볼 일이다.

우리의 평균은 어쩔 수 없는 75A, 또는 80A이며, 살이 찌면 가슴도 커지고 살이 빠지면 가슴도 작아지는 자연인일 뿐이다. 자기 검열이 심해지면 불필요한 스트레스와 자괴감에 빠진다. 그건, 나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슴이 커지는 벨소리가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는 내게, 한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있는대로 살아~" 

정답이에요, 언니.


by 땀c 2010.04.13 16:31

영화 <친구사이?>가 "영상물 등급위원회"를 상대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판정 취소소송을 청구했다고 합니다. 영화 <친구사이?>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12세 이상 관람가로,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15세 이상 관람가였다고 합니다.

기사만으로는 영등위가 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판정을 했는지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몇 년 전 있었던 사건이 떠올라서 그 이유가 충분히 추정되네요.

동성애는 청소년 유해물이다?

2002년 즈음,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서는 청소년을 보호하겠다고, '수호천사'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전국의 초중고, PC방등에 유해사이트 차단 프로그램으로 설치되었죠. 그래서 수많은 동성애 관련 사이트가 차단되었습니다. 동성애 잡지 [advocate.com]과 UN의 자문단체인 [동성애자인권운동네트워크](ilga.org), [이반시티], 국내 최초의 인터넷 게이 커뮤니티인 [엑스죤], 한국여성성적소수자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와 같은 인권단체들도 차단대상이 되었습니다.

당시의 사이트를 차단했던 이유는 "사회통념상 허용되지 아니한 성관계를 조장"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영화 <친구사이?>는 그로부터 약 10년이 흘렀는데도 똑같은 일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 <친구사이?>를 보고 난 소감

며칠 전에 저는 <친구사이?>를 보고난 감상을 포스팅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제가 느낀 것은, 풋풋함, 사랑스러움, 애잔함, 위로, 이런 것들이었어요.
<친구사이?> 감상평 보기, 클릭!

그리고, 많이 관심을 가지고 있을 그들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글쎄요, 사랑하는 20대들이라면 당연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장면이었습니다. 같은 장면을 이성이 찍었다면, 평범하기 그지 없을 장면입니다.

참으로 싱그러운 그들.



김조광수 감독은 "소년, 소년을 만나다"에서 10대 소년들의 사랑을 그렸고, <친구사이?>에서는 대한민국에서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20대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었다고 합니다. <더 월 2>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여성 동성애자들의 이야기를 10대, 30대, 60대 노인의 시점에서 잔잔하게 그려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더 월 2>와 같은 좋은 영화가 계속 나올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도 품게 해준 영화입니다. 우리가 잘 모르는 것, 하지만 알아야 하는 것을 알려주는 영화, 사람이 누구나 자유롭게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이런 것을 <좋은 영화> 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성애가 나쁜가? 자유를 침해하는 사회가 나쁜가?

너는 왜 이성을 좋아하는 거야! 어디가 잘못된 거 아니니? 정신과 상담 한 번 받아볼까?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을 상상해본 적 있으신가요.


동성애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동성애가 퇴폐적이고 에이즈와 같은 병을 낳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오히려 이성간의 섹스가 폭력적이고 건강에 위해가 되는 방식으로 행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성간에도 청결하지 않은 방식으로 관계를 가진다면 에이즈 또는 각종 성병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죠.

세상에는 다수가 정해놓은 rule 이 있어서, 이것에서 벗어나면 나쁘게 보이는 법입니다. rule 은 지배하다라는 뜻도 있지요. 지배자, 다수의 권력이 만들어놓은 것은 소수자에게는 억압으로, 부당한 권리 침해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어른이 되면 성적으로 성숙한 인격체가 되나?

청소년들에게 제대로 된 성문화를 심어주는 것보다, 무조건 차단하고자 하는 지배적논리 역시 유감입니다. 10대에는 무엇이든 처음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무분별한 접촉보다는 '바른' 경험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어른들이 할 일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너희들은 아직 그런 거에 관심 가지면 안돼.'라며 진실을 가리려고 하거나, 여자 아이들에게 순결 캔디 같은 것을 나눠주며 성에 관심을 가지는 자연스러운 행동을 비난하는 것은 그리 맞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성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주는 것이 진짜 아이들을 위한 것 아닐까요. '자위'는 나쁜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거야. 나중에 성관계를 하게 되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할 수도 있으니까 '피임'은 꼭 하렴. 피임 방법은 이런 이런 것들이 안전하단다. 성관계를 할 때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확인하는 것이 중요해. 니가 좋은 것이 상대방에게는 좋지 않은 것일 수도 있거든. 그리고 혹시 이성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좋아진다면, 그것 역시 자연스러운 것이니 너무 괴로워하지 않아도 돼. 이런 이야기들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영화 <친구사이?>는 성적 정체성 혼란으로 힘들어하는 10대와 20대에게 위로가 되는 영화입니다. 주인공 민수와 석이는 서로를 정말 아끼고 기운을 북돋아주는 방법을 아는 멋진 친구들입니다. 2002년 당시 동성애 사이트를 차단할 때, 기댈 곳이 없어 그나마 온라인으로 고민을 털어놓고 기운을 얻던 친구들은 이중으로 가슴에 상처를 입어야 했습니다. 자살을 상상하고, 실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친구들도 있었어요. 이것은 가히 사회적 살인이라고 불러도 무방합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은 우리가 깨기 어려운 것 중에 하나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여기, 동성애, 트랜스젠더 등에 대한 편견을 유쾌하게 날려버리는 만화를 소개합니다.





네이버에서 연재중인 <어서오세요 305호에>라는 만화에서는, 대한민국 평범 20대인 주인공이 어떻게 좌충우돌 자신의 편견을 깨닫게 되는지 생생하고 재미나게 그려집니다. <305호>의 세상은 유토피아도 아니고, 상상도 아닌 우리가 맘만 먹으면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세상입니다.

영화 <친구사이?>에 대한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은 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 수많은 성소수자들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부당합니다. 영화도 더욱 많은 분들이 보았으면 좋겠네요.


* 이 글은 생활인 블로거 네트워크 "주권닷컴"으로도 발행했어요~

by 땀c 2010.02.05 11:27


오세훈 서울시장하면 떠오르는 것은 '디자인 서울', 그리고 '이벤트'다.

그렇게 열심히 한강 주변 갈아엎고 스노우보드 대회 개최하고 그러더니..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며 자랑중인 모양이다.


해외 언론이 주목하는 '디자인 서울'...영국 디자인전문지 "베스트디자인 도시 톱5"


아.. 불편하다 불편해. 저 영국 사람들은 서울 사진 몇 장만 보고 도시를 선정했던 게 아닐까.
"디자인 전문지"를 만든다는 저 사람들의 디자인 철학은, 겉보기에만 신경쓰는 오세훈의 디자인 철학과 닮아 있음이 틀림없다.


겉모습에만 힘쓰다 '뻘짓'을..

난 디자인에 무지한 무지랭이 도시 서민일 뿐이지만,
그저 겉보기에만 좋은 것이 좋은 디자인일까, 에 대해 깊은 의문이 든다.

은행나무를 뽑아서 햇빛도 뭐도 안 가려지는 이상한 파라솔을 설치하고, 주변에는 시민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공간도 없고 외로운 섬마냥 동동 떠있는 협소한 공간을 광장이라고 만들었다.

이명박의 청계천으로 시작된 물길 디자인이.. 오세훈의 한강, 대학로, 남산 물길로 이어지고 있다. 대학로에 무리하게 만든 물길은 사람들이 발이 빠지는 일이 속출하자 다시 36억의 세금을 들여 덮개로 덮어놓았다. 남산의 산책로에도 물길을 만든다고 하자, 마라톤을 연습하던 시각장애인들이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라고 한다. (출처 - 블로그 <진화심리학> 나는 '디자인 서울'이 싫어요 )



웰컴 투 서울~ 시민은 '아웃 오브 안중'

오세훈이 항상 되뇌이는 말이 있다. 세계 속의 서울, 외국인들이 즐겨 찾을 수 있는 아름다운 수도.

애초에, 외국인이 관광을 오도록 하기 위해 건축을 한다는 것이 이상하다. 서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잘 살고, 일상에 여유가 생기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도시는 매력이 넘치고 생동감이 생길 것이다. 무작정 원주민을 몰아내는 재개발로 사람이 죽어나가고, 생계형 포장마차를 겨울철 길거리에 내동댕이 치는 비인간의 회색도시가 아름답다니.

엄연히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을, 수천억대의 화려한 조명과 시설로 가려버리고, 그들을 없는 것처럼 취급한다.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인권이 없는 도시는, 아무리 화려하게 꾸며봤자 빈 껍데기일 뿐이다.

영등포의 화려한 타임스퀘어 뒤에 공존하는 재래시장과 쪽방촌, 성매매 업소 여성들의 삶을 오세훈 시장은 어떻게 '디자인'하고 있을까. 서울시는 그들을 '디자인 서울'이 그려진 예쁜 가림막으로 가려놓았다.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은 딱 거기까지이다.

김대훈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과 곽영훈 박사의 2009년 12월 대담 중 일부를 곁들인다.
(전문 보기)

어떤 건축가의 말로 종합해보면 디자인 수도 건물이라고 운동장을 모두 허물어 버리고 지금같이 국적 불명의 비싼 건축으로 새롭게 짓는 일을 ‘터무니’ 없는 짓이라고 하더라. 시민 세금 낭비하고 운동장의 역사적 흔적이 영원히 사라지고, 나중에 또 허물 수 있게 지으면 되겠는가? 그래서 도시행정은 공익성의 승화에서만 정당성을 찾을 수 있고 유난히 윤리의식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도시 디자인은 그 시대 돈과 권력을 쥔 사람들의 심리랄까 영혼이 드러난다는 느낌이다. 요즈음 지어지는 빽빽하게 지은 고층 아파트를 볼 때, 그리고 뉴타운,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광화문광장,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 차원에서 지어진 건축물을 볼 때 오시장의 천박한 과시욕, 낮은 미적 감각과 건설 회사들의 앞뒤 가리지 않는 이윤 추구 욕망이 물씬 풍겨나온다. 몇 십년 후에는 또 남산 외인아파트나 여의도광장처럼 흉물로 되어 철거되지 않을까 한다.


*이 글은 생활인 블로그 네트워크, '주권닷컴'(http://blog.ohmynews.com/peoplepower/) 으로도 발행했어요~

by 땀c 2010.01.19 12:39

뒤늦게 알았다. 스펀지 신년특집 "내조" 사태를...

KBS 스펀지에서 1월 1일 신년특집으로, 유부남 2103명에게 “아내를 소녀시대보다 예뻐 보이게 만드는 최고의 내조는?”이라 물었다 한다.

아하...그냥 "마누라"는 "소녀"들만큼 젊지도 섹시하지도 애교스럽지도 않아서 자신의 성적 판타지는 "마누라"가 아닌 "소녀시대"가 충족시켜준다는 전제를 당당히 깔고 있는, 저 질문도 질문이지만..

대답의 내용이, 썩 유쾌하지는 않은데 (사실은, 매우 불쾌한데)
이러한 답변을 보고 예능 프로라는데서 웃고 즐겼다는 거 아닌가.

<최고의 내조>
4위 - 술먹은 다음날 “여보, 꿀물 드세요”라고 꿀물을 대령하는 아내.
3위 - "설거지는 그냥 두세요”라며 집안일 신경 안 쓰게 해주는 아내.
2위 - “여보, 밖에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오세요”라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도록 배려하는 아내.
1위 - 남편보다 먼저 출근하며 “여보, 저 오늘도 돈 많이 벌어올게요”라고 웃어 보이는 맞벌이 아내


1위가 "맞벌이"가 되었다는 점을 보면, 남성들도 자신이 가정 경제를 책임지는 데 많은 부담과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안다. 이 시대에 직장생활을 비롯한 경제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남성들의 어깨에 부담이 지워진 것도 사실이라는 것도.

그런데, 나머지 순위를 보면 그렇게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뚝, 줄어들고 만다. 슬프다. 우리는 동지적 관계로 이 MB시대, 신자유주의 시대를 헤쳐나가야 하는데, 나는 동지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꿀물을 대령"해야 하고, 집안일 "신경 안 쓰게" 내가 다 알아서 해야 하고, 힘든 사회생활 하는 그이가 스트레스 풀 시간을 보장하고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나도 사회생활을 한다!

여성의 가사노동시간과 남성의 가사노동시간을 비교한 (차마 믿기 힘든) 유명한 통계가 있다. 통계청의 2007년 조사에 따르면 부부가 맞벌이일 경우 부인의 가사노동 시간은 하루 평균 3시간 28분으로 남편(32분)의 6.5배에 이른다고 한다.
(출처 - 아버지가 육아와 가사에 참여할 때 아이는 이렇게 달라진다 http://miznet.daum.net/contents/mizmom/parenting/parentguide/father/view.do?cateId=9819187&docId=15959)

1위부터 4위까지가 종합된 것을 원하는 건 아니다, 라는 "변명"이 의견으로 개진되는 거 같은데... 통계를 100% 믿을 수야 없는 일이지만, 저 통계는 1999년도에도 저랬다. 2002년에도 그랬다. 숫자가 바뀔 수는 있어도, "맞벌이 가정에서도 부인의 가사노동시간이 남편보다 많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방송 내용이 저 통계를 입증하고 있다.

그런데, 스펀지 신년특집에서는  "최악의 내조"도 꼽았다고 한다.

"꾸미지도 않고 저축만 할 때"


'집안일은 했으면 좋겠지만, 집에만 있는 건 별로다.'
'알뜰했으면 좋겠지만, 외모를 안 가꾸는 것도 별로다.'

아이고야....

이쯤에서 '루저의 난'이 안 떠오를 수가 없다.
미수다에서 한 대학생이 몇 초동안 내뱉은 말을 가지고 온 나라가 들썩였다. 2009년 하반기 대한민국에서 루저라는 말을 모르기는 어려웠다. '루저녀'가 워낙 개념없이 보였기 때문에 '루저의 난'은 정당해보였고, 그들의 분노에 의문이라도 가질라치면 돌이 수없이 날아왔다.

그런데 스펀지에서는 적어도 몇 십분동안, 동영상까지 만들어가며 고정된 성역할을 정성껏 퍼뜨렸다. 그것도 정초부터 방송했다. 꽤 많은 여성들, 가부장제를 비판하는 남성들이 이러한 방송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런데 '난'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난'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다.
'루저의 난'은 외모의 절대기준을 강요하는 사회적 관점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었지만, 한 개인에 대한 폭력성도 짙었고, 성대결로 가면서 역시나 감정만 상하고 결론은 산으로 갔다. 내가 '여성들이여! 파업하라! 집안일에서 당장 손 뗍시다!' 라고 선동이라도 할라치면 역시나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상한 마음을 추스른다. 마음을 추슬러도 스펀지 신년특집은 수신료가 아까운(더군다나 2,500원에서 5~6천원이나 올리겠다니-ㅁ-;;) 방송임에는 틀림없지만, 분노를 접고, 호소한다.
저 방송이 정말 유쾌하고 보편적인 감성인 것으로 계속 되어야 하느냐고.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다시 되새겨본다면 더욱 수많은 사람들이 유쾌할 것이라고. 티비를 보면서도, 실제 삶에서도.

 * 이 글은 팀블로그 주권닷컴(http://blog.ohmynews.com/peoplepower)으로도 보냈어요.

by 땀c 2010.01.12 15:45
실소도 웃음이다. 
29일, 어이가 없어서 화내다가 피식 웃게 만드는 삼성과 MB의 뻔뻔한 개그콘서트를 보았다.

쇼는 29일 오전에 두개의 장소에서 동시에 일어났다.

1신.
정부는 29일 오전에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건희 삼성 전회장의특별사면을 통과시킨다. 2MB는 말했다.
"평창이 동계올림픽을 반드시 유치하기 위해서는 이 전 회장의 국제올림픽위원회 IOC위원으로서의 활동이 꼭 필요하다는 체육계 전반과 강원도민, 경제계의 강력한 청원이 있었다"

듣고 싶은 얘기만 듣고, 듣고 싶은대로만 듣는다.
이건희 사면 이야기가 나온 시점부터 줄창 반대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는, 들은 게 아니라 그냥 꿀꺽 삼키셨는지?

2신.
29일 오전 10시30분. 한 여성노무사가 출근하던 중 잠복해있던 형사에게 집앞에서 연행된다. 지난 7월23일 삼성전자 수원공장 앞에서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노동자 황민웅씨의 4주기 추모제를 연 혐의(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로 연행된 것이다.
5개월동안 전화로 출두하라는 연락이 왔을 뿐 출두명령서는 한 번도 받지 못했다. 체포될 당시에도 체포영장은 없었다. 연행된 노무사는 12월 30일에 출석해서 조사를 받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출석하기로 한 날의 하루 전, 그리고 삼성 이건희의 특별사면이 발표되던 바로 그 시각에 그녀는 연행되었다.


연행된 노무사는 현재는 풀려난 상태이지만, 고것이 더 열받게 한다!
체포가 합당하든 안 하든, 일단 잡아넣고 나서 보자는 것인가.
그녀는 삼성전자 사업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리거나 숨진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단체인 ‘반올림’(반도체 노동자 건강과 인권 지킴이)에서 활동해왔다. 아주 오래전부터 삼성에 찍혀있었단 이야기.

"회장님"의 위세와 권위가 대한민국 전역에 확인되는 그 시점, 가장 눈에 거슬리던 그녀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주려고 한 것인가. 아니면 "회장님"과 MB에게 충성심을 보여주고자 한 종로경찰서의 오버인가. 특별사면된 "회장님"에게 그녀를 잡아서 축하 선물이라도 주려고 한 것이었는가! 아니, 제물인가?! 심사가 매우 뒤틀어진다.


그리고 .........그들의 그 뻔뻔함.
누가 봐도 특혜인 이건희의 사면을 결정하던 바로 그 시각에,
일하다 억울하게 죽어간 노동자들을 위해 일한 사람을 잡아가두는 그 뻔뻔함에
'법치'를 함부로 내뱉는 그 얄팍한 입술에
그저 실소만 나올 뿐이다.

(이 글은 주권닷컴 http://blog.ohmynews.com/peoplepower/  으로도 발행했습니다)


by 땀c 2009.12.30 17:47

40대, 불혹이라더니..

일요일 밤, 우연히 보게 된 TV 프로에서 참 신선한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30대 후반~40대의 각자 자기 분야에서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카메라 감독은 소설가를,
칼럼니스트는 베트남 음식점, 
심리학 교수는 디자이너,
방송인은 유치원 선생님... 

흔들리지 않아서 "불혹"이라던 40, 하지만 40대를 살아가는 선배들은, 여전히 꿈이 있고 인생을 어떻게 살지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다.  정년퇴임을 눈 앞에 둔 50대 후반 저희 아버지도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다. 


노는 것을 허용하자

이 프로그램에서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 다양한 꿈을 쫒는 40대 대한민국 남성들을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이제 지친 몸을 달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쉬어가면서 살자"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놀 권리, 게으를 권리를 주자는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경쟁경쟁경쟁,돈돈돈돈돈,스펙스펙스펙을 이야기하는 이 몹쓸 스펙의 사회에서 "여유를 찾자"는 것은 소중한 메시지입니다. 박민규 소설 "삼미 수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보내는 메시지처럼.

물론, 청년 실업을 해결하려면 열심히 스펙을 갈고 닦아야 한다고 얘기하는, CEO 출신 대통령은 절대 이해 못하겠지만요.


"나"의 노력보다 "우리"의 노력이 필요해요

그런데, 먹고 살기도 힘든데 그런 건 여유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냐는 질문이 던져졌습니다.

패널 중 한 사람인 김정운 교수가 그러더군요.
행복해지려면 심리학적으로,
부(富),시간 10% + 유전(쾌활하고 낙천적인 성격 등) 50% + 자신의 노력 40% 가 필요하다구요.

패널, 명지대 김정운 교수. (출처-한성주 블로그)




음..
저는 심리학은 잘 모릅니다만, 과연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어 병원비가 감당이 안되는데,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 물, 전기, 가스 등...이 해결이 안되는데,
낙천적인 사람이 즐거운 취미를 찾아서 노력하면 그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요?

부, 시간 10% + 스펙으로부터 서로를 자유롭게 하는 노력 30% + 생존에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회 60%..
이 정도는 되어야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 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누군가 그러더군요. "평균수명이 길어진 것이 인류 최대의 재앙"이라고..
인생은 너무나 긴데,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커녕, 남은 인생은 오히려 공포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을 개인의 노력으로 감당하고 여유있는 삶을 누리라고 이야기하는 건, 말 그대로 여유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열심히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꿈을 꾸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 이 글은 주권닷컴으로도 발행되었습니다.


 
by 땀c 2009.11.30 17:55

한 가난한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아이가 둘 있었고, 한 남자를 만나 보증금 50에 월세 20짜리 옥탑방에 살았다.

어느 날, 그 남자가 10살짜리 의붓딸을 성폭행했다. 그녀는 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남편은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그 뒤 그 남자의 아이를 낳았다. 혼자 아이 셋을 키워야 하는 그녀가 쥘 수 있는 돈은 한 달동안 기초생활수급자로 받는 40만원 뿐이었다.

그녀가 항소심 법정에서 남편의 선처를 호소했다. 제발 우리가 쓰러지지 않고 새출발 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법정은 자신들의 고민을 한껏담아 꽤 인간적인 판결문을 만들어냈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삶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라서, 죄를 벌하기 위해서는 양형기준을 적용하는 것 이상으로 피고인과 피해자,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개별적 고통을 생각해야 한다. 피해자는 현재 정상적으로 학교생활을 하고 있고, 아빠의 처벌 의사에 대해 ‘엄마의 뜻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이다. 삶에 대한 지혜가 부족한 이 법원으로서는 자신의 딸을 강간한 이를 선처해달라는 이의 심정이 어떤지 가슴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에게 희망을 걸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자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


어려운 법률용어만 난무하는 판결문들속에서 이런 내용의 판결문은 분명히 특별하다. 재판부는 웬만하면 남편을 집행유예로 풀어주고 싶었으나, 법적으로 최대로 감해줄 수 있는만큼 감해서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더 감해주고 싶은데 감해줄 수가 없어서, 관련 법조항(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위헌법률심판 제청까지 고려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행복해졌나요

항소심 재판부가 인간적인 판단을 집어넣은 것은 참 잘한 일이다. 법 한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현실 고려 없이 소위 "법리"에 의해서만 판단하고 그것이 옳은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판결문 그대로,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서 다양한 맥락이 있고, 나는 옳다고 여기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옳지 않기도 한 법이다. 그래서 재판부는 "오죽했으면...쯧쯧"하고 감형을 해주었다.  

하지만, 남편을 풀어주는 것이 정말로 그녀가 "원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래서 그들은 남편이 풀려나면 모든 일이 잘 해결되는 것인가? 
어린 딸에게 평생 지우기 힘든 상처를 줬고, 자신도 말할 수 없이 상처입었고, 같은 공간에 있는 것조차 끔찍할, 더구나 삶을 의지하기에는 너무나 부실한 사람에게 도움을 청할 수 밖에 없는 그 현실.
딸이 상처를 잘 이겨냈다는 것은 참 다행한 일이지만, 그것 역시 그렇게만 넘기는 것은 참 무책임한 일이다. 그 아이는 성폭행한 의붓아버지를 보지 않을 권리조차 없다. 다시 반복될지 모를 성폭력에 대한 공포를 안고 살아야 한다. 얼마나 끔찍하고 비인간적인 상황인가.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다.

그녀는 아마 일자리를 구하려고 수없이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도 가지 않는 아들과 한참 손 많이 가는 젖먹이가 있다. 아이들을 맡길 돈도 사람도 없다. 안 그래도 30대 중반의 여성이 일할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더구나 아이들을 데리고 일을 할 수 있는 곳은, 아마 그 어디에도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일하면서 자립하고자 하는 사람이 일을 할 수 있게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아이를 낳으라고만 하지 말고 아이를 키울 수 있게끔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국가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란 게,
최저임금마저 깎으려고 하다가 꼴랑 110원 올려주고, 임태희 노동부 장관은 최저임금 차등지급을 추진한다고 한다.
청년들 일자리 구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더니, 신입 사원 초임을 삭감해서 일자리를 나누고, 각자 알아서 자신을 계발하고 다양한 일자리를 알아보는 시야를 키우라고 한다.

몇 년 전 이회창이 대선 후보 당시에 뭔지도 몰랐던 그 옥탑방. 그들은 그 옥탑방에 살고 있다. 이제는 옥탑방이 뭔지, 치솟는 물가 속에서 최저임금으로 한 달 살이가 어떤지 정도는 좀 알아야 하지 않겠나 말이다. 알고 있다면, 기업 프렌들리만큼 서민 프렌들리 정책들도 좀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그나마 있는 복지예산, 최저임금 깎지 말고. 한국형 로제타 플랜이라도 시도해봐야 하지 않는가.

그녀의 남편에게 집행유예를 주는 것은 해피엔딩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그래서, 남편을 감형해준 항소심 재판부에게 할만큼 했다고 칭찬해줄 수는 없다. 주목받아야 하는 것은 항소심 재판부의 "인간적인 면모"가 아니라 이 몹쓸 "비인간의 사회"이다.

* 이 글은 주권닷컴으로도 발행하였습니다.
 
by 땀c 2009.11.20 15:59

이명박 정부는 마치, 초등학교 어느 교실의 못된 반장과 같다. 지 눈에 꼴뵈기 싫은 애들을 따시키고 말 잘 듣는 애들에게 간식을 잔뜩 안긴다.

2008년, 촛불에 단단히 데인 정부는 촛불이 잦아드는 듯 하자 복수의 칼날을 벼렸다. 그래서 수많은 스킬을 시전하였는데, 내가 본 최고의 유치뽕짝 치사빤스는 바로 이거다.

촛불든 시민단체들 솎아내서 정부지원 뚝 끊기.

앞으로 안 주겠다는 거면 차라리 다행(;;)이다. 예산이 이미 통과돼서 사업이 착수 됐지만, 사업 진행 중에 뚝 끊고 줬던 돈도 다시 뺏는다. 단체는 그나마 있던 공간도 줄이고 상근비도 줄이고 상근자 수도 줄인다. 단체 존속이 위태롭기까지 하다.

단체 성향이 반정부적이면서 어떻게 정부 돈을 타서 쓰냐고?

정부에서 신경 안 쓰는 비정규직, 농민, 장애인, 환경, 여성 등등, 사회적 약자 계층을 위한 사업 또는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최소한의 사업들까지 지원이 끊겼다. 광우병 위험 물질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라고 요구를 했다는 이유로.

그리고, 반정부 성향이면 어때? 정부 정책에 비판을 할 수 없는 나라라면, 스스로 독재라고 공표하는 것이다. 그렇게 목숨 거는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에 다양성이란 깨알만큼도 없다는 소리다.

치사빤스의 절정, 말 잘듣는 애들만 간식주기

이렇게 돈으로 치사하게 굴어놓고는, 보수단체에 했던 정반대의 행동은 정말 손발이 오그라들게 한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 비영리단체 등록을 위해 보통 30일의 처리 기한을 채워왔고 등록 서류 등도 까다롭게 검토해왔지만[각주:1], 올 초 보수단체 등록 과정은 그렇지 않았다. 접수일로부터 2~3일 내지는 접수 당일 등록 되기도 했다. 



 관련 기사 :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보수단체 지원(한겨레)
                 지원대상 선정 민간단체, 등록서류 들여다보니…(위클리 경향)


신청일 누락은 애교고, 총회 회의록이나 임대차 계약서 등의 필수 서류를 빠뜨려도 단지 신청서만으로 등록이 처리 되었다.
전화로 입주 여부를 확인했다고 변명하지만, 변명은 항상 안 하는 게 더 낫다. 이 쯤에서 나라 돈 먹는 방법이 참 쉽다는 것을 확인해보자.

스텝 1. 6.25, 자유, 대한, 라이트, 선진화 등등의 정체성을 팍팍 드러내는 단체 이름을 짓는다.
스텝 2. 촛불에 대한 혐오감을 최대한 드러낸다. 시민 분향소를 부수고 가스총을 난사하는 등 폭력도 불사하면 효과는 확실하다.
스텝 3. 사무실 입주 계약서만 한글 파일로 만들어 보낸다.
스텝 4. 전화기만 딸랑 설치해놓거나, 연결되는 전화번호 하나만 마련한다.  
스텝 5. 비영리 단체 등록 신청서를 내고, 기다리면 길어봤자 3일.

나라 돈 먹기, 참~ 쉽죠 잉~

보수단체들이 얼마전, 박원순 이사를 규탄하는 집회를 아름다운 가게 앞에서 열었다고 한다. 
그들은  “앞으로는 국가와 기업을 매도하고 뒤로는 막대한 후원과 지원을 받아내는 이중 행각은 이제 그만 둘때가 됐다”고 충고했다. (관련 기사 - "박원순 주장, 지원 더받으려는 협박아니냐" )

그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 국가와 기업에 충성하는 자들에게만 떡고물이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테니까.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 따위는 헌법에서 삭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신념일런지도 모르겠다. 

'듣보잡' 보수단체들에 대한 정부의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밀어주기, 정말 세금이 아깝다. 

 



*이 글은 주권닷컴 (http://www.jukwon.com )으로도 발행되었습니다.

  1. 현행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과 시행령 상 (비영리단체) 등록을 위해선 지난 1년 간의 공익활동실적과 전년도 결산서와 당해연도 및 전년도 사업계획·수지예산서·총회회의록 등의 서류를 제출한 후 30일 이내에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30일을 거의 채울 만큼 꼼꼼한 심사가 이뤄지는 게 보통이라고 함 [본문으로]
by 땀c 2009.10.09 13:19
사회부 기자로 일하고 있는 친구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사회부 사건은 성폭력 사건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것을 모두 기사화하지는 않는다고.

가족들이 원치 않는 경우가 많아서 기사를 올려도 가족의 요청으로 곧 내리게 되기도 하고,
기사를 싣더라도 사건이 일어난 사실관계는 묘사하지 않고, 최대한 간략하고 일반적인 팩트만 싣는다고 했다.
기사가 되는 것보다 취재원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더 우선이니까.

"나영이 사건"이 이토록 공론화되고 있는 것을 보고, 며칠 째 마음이 복잡하다.
무엇이 나영이와 그 가족들에게 더욱 좋은 것일까.

그 피해의 끔찍함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나 슬퍼하고 분노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긴 하다. 특히, 아이의 부모가 보험금을 탔다는 이유로 자치단체의 지원금도 환수되고 생활보호대상자에서 제외되었다는 사연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의 항의전화도 있었다. (조사결과 일시 중단이 있었으나 지원 재개하고, 지원금은 미환수되었다고 함)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참 많다.
 (관련글 - http://www.journalog.net/psrabell/17859 )

하지만, 우린 아직도, 성폭력 피해자가 숨어들고 더욱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나영이라는 이름이 가명이긴 하지만.. 수많은 세상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어느 덧 아이가 살고 있는 동네도 드러나고, 아이가 당한 피해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결국 그들은 세상 앞에 드러나게 되었다.

이 사건을 이야기해야만 한다면, 그래서 사회가 좀 더 아름답게 되도록 해야 한다면..
아이가 겪은 피해를 중심으로는 이야기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 피해가 너무나 끔찍했기에 많은 사람이 분노했고 이 사건이 알려지긴 했지만....그 진실이 자극적인만큼 왜곡과 호기심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피해의 정도가 큰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모든 (성)폭력은 피해의 정도와 관계 없이 피해자 입장에서는 끔찍한 기억이고,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건 마찬가지다.
 
이 사건을 이야기해야만 한다면,
비록 가명이지만 피해자의 이름을 부르지 말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의 이름을 불렀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사건은 나영이 사건이 아니라 "조두순 사건"이다. 세상 한 가운데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그를 향한 시선이 다양한 만큼 평범한 사람에게는 너무나 두려운 일이다.
by 땀c 2009.09.30 16:51
| 1 2 3 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