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수목드라마 <개인의 취향>은 꽤 재미있다. 박개인(손예진 분)의 독특한 패션 감각과 맛깔스럽게 날려주는 대사에는 배를 잡고 웃게 되고, 전진호(이민호 분)의 까칠하면서도 부드러운 마음 씀씀이를 보면서는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다. 박개인의 변화되는 모습과 더불어 박개인과 전진호의 러브라인도 시동이 걸리기 시작하니 점점 빠져들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하지만, 이 감칠맛 나는 드라마에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장면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니,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 드라마에 빠져들 수가 없어 안타깝다.
 
성소수자에 대한 호감과 오해 사이의 아슬아슬 줄타기



전진호가 엄중히 그러지 말라고 경고했고, 스스로도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반복되는 박개인의 아웃팅. 전진호는 드라마상에서 실제로는 게이가 아니고 박개인도 아웃팅은 나쁜 것이라고 인지하고 사과를 하지만, 사실 이것이 실제 상황이라면 굉장히 끔찍한 상황이다.
 
동네 갈비집에서 "게이다"라는 것이 밝혀지고, 업무상 관계자도 그 이야길 들었다. 전진호가 실제로 게이였다면 그가 감당해야 했을 타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아웃팅은 범죄다"라는 이야기도 있는 만큼, 아웃팅이 드라마에서 그려진 것처럼 재미있는 에피소드감이 될 수는 없다.
 
최 관장(류승룡 분)이 당한 아웃팅은 더 끔찍한 것이다. 한창렬(김지석 분)은 우연히 친구를 만나 최 관장의 성정체성을 듣게 된다. 그리고 최 관장이 듣는 앞에서, 전진호에게 "너, 남자도 아니었어?"라고 몰아붙인다. 아, 끔찍해라.
 
그런데, 개인은 진호가 더럽다고 이야기하는 창렬에게 이야기한다.
 
"더러워? 진호씨가 왜 더러워. 여자든 남자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건데. 넌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해본 적도 없는 인간이잖아. 그런 니가 뭔데 진호씨를 더럽다고 얘기해."
 
한창렬로 대표되는 호모포비아들을 향한 따끔한 비판이 이 드라마가 말하고 싶은 바일 수 있다. 하지만 진호의 동료인 상준(정성화 분)이 어설프게 게이 흉내를 내며 "사실은, 저 '퍼펙트한' 남자입니다"라고 밝히고 싶어하는 장면이 신경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성소수자에 대한 호감을 만들어내는 점에서 꽤 괜찮은 드라마라고 생각되면서도, 막상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보기에 불편할 장면들은 아슬아슬하게 몰입을 방해한다. 몰입을 방해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여자 만들기"가 아니라 "당당한 사람으로 살기"였다면
 
개인은 창렬에게 "성인 여자로 느껴지지 않았다"라는 말을 듣고, 진호에게 자신을 여자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들은 남자를 애태우는 여자가 되기 위한 트레이닝에 돌입한다.
 
"여자들이 왜 약속시간에 10분씩 늦는지 알아야 진정한 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남자 앞에서 게걸스럽게 먹는 여자, 매력있을 거 같아요? 고기한테 환장한 여자도 매력 없거든요?"

 
진호는 개인에게 우아하게 걷고, 남자를 기다리게 해야 하며, 데이트할 때는 깨작거리며 먹어야 하고, 남자가 만나자고 했을 때 바로 뛰쳐나가면 안된다고 가르친다. 진호의 이야기는, 일반적인 데이트 규범이다. 데이트 규범이란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존재한다.


남성은 여성을 리드해야 하고, 능력있는 이미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규범이 있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이런 데이트 규범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은 서로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래서, 이런 데이트 규범을 정당화하고 확산하는 것으로 보이는 드라마의 장면은, 마냥 재미로만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최근 드라마의 전개를 보면, 진호는 개인에게 전형적인 여성성을 가르치면서도 개인의 진짜 모습에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진호가 개인에게 정말로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연애는, 자존심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존심을 지켜주는 거예요."

진호는 개인에게 제발 배려와 헌신만 하지 말고 자신을 사랑하라고, 자신의 주장을 가지고 당당한 사람이 되라고 이야기한다. 여성에게 순종과 헌신을 바라는 전통적인 관념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이 드라마가 정말로 말하고 싶은 바는 무엇일까? 헷갈리면서도 기대를 하게 만든다.

<개인의 취향>은 사랑스러운 등장인물에 빠져드는 전개 등으로 상당한 매력을 갖춘 드라마다. 하지만 아슬아슬 줄타기에서 발을 헛디뎌서 드라마에 호감을 가지게 된 나와 같은 시청자들을 슬프게 하지는 말아 주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생긴다.

* 이 글은 주권닷컴, 오마이뉴스로도 발행했어요.

by 땀c 2010.04.28 13:58

그 빛나던 지식의 별들은 어디로 갔을까.

지난 9일 방송된 KBS2 <스펀지 2.0>에서는 "가슴이 커지는 벨소리"가 소개되었다. 일본의 심리학자 히데토 토마베치라는 사람이 발명한 것인데,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뇌에서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젖샘이 발달, 가슴이 커진다는 것이다.

실험에 참가한 연예인이 하루 20회씩 '가슴을 생각하며' 2주간 이 벨소리를 듣자 가슴이 0.2cm 커졌단다. 방송 후 인터넷은 뜨겁게 달아올랐고, 발빠른 음원회사는 기존에 나와있던 아기 울음 벨소리를 '가슴이 커지는 벨소리'로 이름을 바꿔서 내보냈다.

"가슴이 커지는 벨소리가 있대!"

"정말? 들어봐야겠는 걸?"

이렇게 가볍게 웃으면서 넘어갈 수도 있다. '예뻐질 수 있으면 좋은 거 아냐?'라며 '좋은 게 좋은 거지'하는 심정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 찝찝함은 무엇일까.

실험에 참가한 연예인 김지혜는 농담처럼 말했다. 자신은 가슴이 작아도 그다지 마음 고생이 심하지 않았는데 "남편이 마음 고생이 심했다"고.

자고로, 농담이 재미있는 이유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어서다. 여성들의 가슴을 향한 열망이 어디로부터 시작되는가, 그 핵심을 찌르는 말이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욕망이 나를 망친다



<스펀지 2.0>에서는 대한민국 여성들의 가슴 사이즈가 평균 75A~80A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방송에서는 이것이 마치 "안타까운 현실"인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현실"인 것이며, 대한민국 여성들의 "자연스러움"일 뿐이다.

"자연스러움"을 거부하는 것은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한다. 영화 <색, 계>가 상영 당시 여러 사람을 놀라게 했던 것 중 하나는, 주인공 탕웨이가 정사신에서 당당히 보여주었던 소위 '겨털(겨드랑이 털)'이었다. 탕웨이의 '겨털' 때문에 정사신에 전혀 몰입이 안 되었으며, 성적 감흥을 못 느꼈다는 영화 감상 후 뒷 이야기를 종종 볼 수 있다.

몸에서 나는 털은 다 이유가 있어서 나는 것일 텐데, 특히 땀이 많이 나는 부위여서 중요한 기능을 하는 겨드랑이 털을, 우리는 혐오한다. 여성들은 데이트 전, 옷 입기 전, 점검하고 삭제한다. '외모' 혹은 '사회의 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만'하는 이런 일들은 귀찮을 뿐 아니라 피부에도 몹쓸 짓이다.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이란, 개인 한 사람이 벗어나기 매우 힘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위력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고,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을 향한 개인의 노력은 "열정"인 것으로 칭찬받는다. 그런 '열정'이 없으면, 그 사람은 암묵적 또는 가시적으로 도태된다. 이 현상은 특히 가진 것 없는 사람일수록 속박하고, 그 기준도 매우 충족하기 힘들다. 가슴은 키워야 하지만, 살은 빼야 하는 수많은 여성들은 알고 있다. 두 가지를 동시에 충족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속박은 대부분 "자기 검열"의 형태로 다가오기 때문에, 우리는 대부분 그것이 자신의 선택인 것으로 착각한다. '가슴이 커지는 벨소리'를 하루에 20회씩 시간을 투자해서라도 듣고 싶어지는 것은, 정말 나의 욕망일까.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욕망에 내가 맞춰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볼 일이다.

우리의 평균은 어쩔 수 없는 75A, 또는 80A이며, 살이 찌면 가슴도 커지고 살이 빠지면 가슴도 작아지는 자연인일 뿐이다. 자기 검열이 심해지면 불필요한 스트레스와 자괴감에 빠진다. 그건, 나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슴이 커지는 벨소리가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는 내게, 한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있는대로 살아~" 

정답이에요, 언니.


by 땀c 2010.04.13 16:31

남자는 초콜릿이다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정박미경 (레드박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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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라는 말은 가히'빨갱이'라는 말보다 더 위협적이고 불편한 단어다.
'꼴페미'들은 못생기고, 남자를 혐오하거나 무시하고, 된장녀인데다가 성적으로는 발랑 까졌다는 편견이 덧씌워진다.
그녀들이 연애를 한다? 웬만한 남자들은 그녀들의 연애 파트너를 동정할 지도 모른다. 쯧쯧..... 사내 자식이 어디 만날 여자가 없어서 페미를........

한국 사회의 '페미포비아'에 길들여져 있다면, 이 책은 아주 불편하게 다가갈지도 모른다. 평범한 연애공식에서 여성에게 대입되는 역할에 의문을 가지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가득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고민은, 굳이 페미니스트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정하지 않았을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모두 다른데, 모두 비슷하다

그녀들의 모습은 편견을 덧씌우기에는 외모도 성격도 경험도 달라 천태만상이다. 그런데 그 천태만상 속에 불쑥불쑥 내 모습이 섞여 있다. 마치, 애니어그램을 하면서 1번부터 9번까지 내 모습을 모두 발견하고 혼란스러운, 그런 느낌이랄까. 그녀들은 모두 다른데, 모두 내가 알고 있는 누군가와 또는 나와 닮아 있다.

내 모습을 그 속에서 발견한다는 건 꽤 불편한 느낌이다. 나조차 내가 그런 생각 때문에 그런 연애를 했다는 걸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권위적이고 폭력성까지 갖춘 '나쁜 남자'가 내 앞에서만 보여주는 약한 모습에 뻑이 가서, 내가 그를 밝은 곳으로 이끌어주고 있다고, 그건 나 밖에 못하는 것이라고 착각했다. 잘난 남자의 잘난 지식에 끌려서 그가 나를 보아주는 것에 우쭐했다. '디디'와 '이후'의 생각을 따라가다가 흠칫 놀라는 것은 나뿐일까.

삼십대에도 연애 상담은 필요하다

삼십대에는 모든 게 안정적일 줄 알았어, 이런 푸념에는 연애에 대한 것도 포함되어 있다.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의 삼십대들은 이십대보다 더 치열하게 연애에 대한 고민이 많은 듯하다. 삼십대 여성의 99퍼센트는 가난하고, 쌓아놓은 건 나이밖에 없고, '결혼할 거면 지금해야 한다'라는 기로에 서 있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연애다운 연애를 한 번도 못해보고, 섹스 경험도 없이 삼십대 중반을 맞은 직장 동료 언니,
연하남과 만나다가 자신의 나이만 끊임없이 자각하며 자존감이 떨어지는 언니,
소개팅을 나가면서 이제는 예전처럼 남자들에게 어필할 수 없는 건가 고민하는 친구,
결혼은 하고 싶지 않은데 사랑은 절대 필요한, 그런데 주변에는 유부남이나 아저씨밖에 없어서 선택의 폭이 줄어감을 항상 한탄하는 언니,
착한 남자보다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자신 때문에 항상 고생이라고 말하지만, 결국은 나쁜 남자를 선택하는 언니.

이 책은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그녀들을 어떤 식으로든 응원해준다. 똑똑하게 남자가 가진 것을 이용하되 그에 속하지 않는 법을 아는 초인에게는 '악녀'라는 이미지가 갖는 자유로운 이중성을 이용하면서 가부장제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이라고 북돋워준다. 연하남을 끝없이 돌보기만 하는 것에 지치고 자존감도 떨어진 지아에게는, 자기 안의 돌봄의 욕구를 인정하는 것은 '사랑스러운' 것이며, '이것만은 용납할 수 없다'는 자신만의 데드라인을 정해서 자존감을 지키라는 따뜻한 충고도 더해준다. 내 발로 잘난 남자의 여자가 되겠다고 선택해서 이용만 당했던 자신 때문에 자괴감에 빠진 이후에게는, '진보 마초'란 없으며 그는 '마초'일 뿐이라고 그녀를 위로한다.

책의 말미에, B급연애를 탈출하기 위한 9가지 충고가 곁들여져 있다. 그 중 '자기 욕망에 최선을 다라하'는 말은 최근 이별을 겪은 언니와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말이다.

'남자에게 매달리는 여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여자들에게 매우 뿌리 깊다. 남자에게 매달리는 여자는 비운의 여자이고, 그런 여자는 죽어도 되기 싫은 것이다.

쿨한 여자, 좋다. 그런데 무엇이 쿨한가?

나를 더 사랑해달라고 징징대든, 떠나가는 남자에게 울고불고 매달리든,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그래서 미련 없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진짜 쿨한 것이고 자존감을 드높이는 일이라는 걸 명심하자. 매달리는 여자에 대한 사회적 비하를 내면화하게 되면 정말 솔직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질 수 없다. 이는 자기 욕망을 향해 거침없이 질주하는 여자를 통제하려는 남성적 사회에 속는 것이다.


by 땀c 2010.03.17 19:28

뒤늦게 알았다. 스펀지 신년특집 "내조" 사태를...

KBS 스펀지에서 1월 1일 신년특집으로, 유부남 2103명에게 “아내를 소녀시대보다 예뻐 보이게 만드는 최고의 내조는?”이라 물었다 한다.

아하...그냥 "마누라"는 "소녀"들만큼 젊지도 섹시하지도 애교스럽지도 않아서 자신의 성적 판타지는 "마누라"가 아닌 "소녀시대"가 충족시켜준다는 전제를 당당히 깔고 있는, 저 질문도 질문이지만..

대답의 내용이, 썩 유쾌하지는 않은데 (사실은, 매우 불쾌한데)
이러한 답변을 보고 예능 프로라는데서 웃고 즐겼다는 거 아닌가.

<최고의 내조>
4위 - 술먹은 다음날 “여보, 꿀물 드세요”라고 꿀물을 대령하는 아내.
3위 - "설거지는 그냥 두세요”라며 집안일 신경 안 쓰게 해주는 아내.
2위 - “여보, 밖에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오세요”라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도록 배려하는 아내.
1위 - 남편보다 먼저 출근하며 “여보, 저 오늘도 돈 많이 벌어올게요”라고 웃어 보이는 맞벌이 아내


1위가 "맞벌이"가 되었다는 점을 보면, 남성들도 자신이 가정 경제를 책임지는 데 많은 부담과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안다. 이 시대에 직장생활을 비롯한 경제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남성들의 어깨에 부담이 지워진 것도 사실이라는 것도.

그런데, 나머지 순위를 보면 그렇게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뚝, 줄어들고 만다. 슬프다. 우리는 동지적 관계로 이 MB시대, 신자유주의 시대를 헤쳐나가야 하는데, 나는 동지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꿀물을 대령"해야 하고, 집안일 "신경 안 쓰게" 내가 다 알아서 해야 하고, 힘든 사회생활 하는 그이가 스트레스 풀 시간을 보장하고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나도 사회생활을 한다!

여성의 가사노동시간과 남성의 가사노동시간을 비교한 (차마 믿기 힘든) 유명한 통계가 있다. 통계청의 2007년 조사에 따르면 부부가 맞벌이일 경우 부인의 가사노동 시간은 하루 평균 3시간 28분으로 남편(32분)의 6.5배에 이른다고 한다.
(출처 - 아버지가 육아와 가사에 참여할 때 아이는 이렇게 달라진다 http://miznet.daum.net/contents/mizmom/parenting/parentguide/father/view.do?cateId=9819187&docId=15959)

1위부터 4위까지가 종합된 것을 원하는 건 아니다, 라는 "변명"이 의견으로 개진되는 거 같은데... 통계를 100% 믿을 수야 없는 일이지만, 저 통계는 1999년도에도 저랬다. 2002년에도 그랬다. 숫자가 바뀔 수는 있어도, "맞벌이 가정에서도 부인의 가사노동시간이 남편보다 많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방송 내용이 저 통계를 입증하고 있다.

그런데, 스펀지 신년특집에서는  "최악의 내조"도 꼽았다고 한다.

"꾸미지도 않고 저축만 할 때"


'집안일은 했으면 좋겠지만, 집에만 있는 건 별로다.'
'알뜰했으면 좋겠지만, 외모를 안 가꾸는 것도 별로다.'

아이고야....

이쯤에서 '루저의 난'이 안 떠오를 수가 없다.
미수다에서 한 대학생이 몇 초동안 내뱉은 말을 가지고 온 나라가 들썩였다. 2009년 하반기 대한민국에서 루저라는 말을 모르기는 어려웠다. '루저녀'가 워낙 개념없이 보였기 때문에 '루저의 난'은 정당해보였고, 그들의 분노에 의문이라도 가질라치면 돌이 수없이 날아왔다.

그런데 스펀지에서는 적어도 몇 십분동안, 동영상까지 만들어가며 고정된 성역할을 정성껏 퍼뜨렸다. 그것도 정초부터 방송했다. 꽤 많은 여성들, 가부장제를 비판하는 남성들이 이러한 방송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런데 '난'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난'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다.
'루저의 난'은 외모의 절대기준을 강요하는 사회적 관점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었지만, 한 개인에 대한 폭력성도 짙었고, 성대결로 가면서 역시나 감정만 상하고 결론은 산으로 갔다. 내가 '여성들이여! 파업하라! 집안일에서 당장 손 뗍시다!' 라고 선동이라도 할라치면 역시나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상한 마음을 추스른다. 마음을 추슬러도 스펀지 신년특집은 수신료가 아까운(더군다나 2,500원에서 5~6천원이나 올리겠다니-ㅁ-;;) 방송임에는 틀림없지만, 분노를 접고, 호소한다.
저 방송이 정말 유쾌하고 보편적인 감성인 것으로 계속 되어야 하느냐고.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다시 되새겨본다면 더욱 수많은 사람들이 유쾌할 것이라고. 티비를 보면서도, 실제 삶에서도.

 * 이 글은 팀블로그 주권닷컴(http://blog.ohmynews.com/peoplepower)으로도 보냈어요.

by 땀c 2010.01.12 15:45



가진 것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숨어있는 애환, 뭐 그런 거겠지.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그녀들이 "쏟아내는" 이야기들에 빨려들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1.
자기중심적이고
콧대높고
질투심 많고
인내라고는 모른다, 라고 보이는
여배우들.

예쁘다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안 예쁘다 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보다 행복한 것 같지만
사실은 이 사회가 가리키는 기준에 가장 많이 부합되는 그녀들이어서 
그 누구보다 불안하다.

피부가 좋아야 하고
날씬해야 하고
깔끔해야 하고
때로는 털털해야 하고
이혼하면 안 되고
때로는 사랑도 하면 안되는

이러한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은 애초에 그저 평범하게 살지만
그녀들은 이 조건들을 충족하는 긴장 위에 살기에 '최고'라고 칭송받고 사는 것이다.

그녀들은 말한다. 여배우들이 함께 만나지 않는 이유는, 단지 질투가 아니라 자신이 덜 주목받는 것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누구보다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맞춰서 살면서
자기 자신의 중심은 놓지 않고 살아야 하기에
그렇지 않고는 못견디니까, 어느 덧 자신은 사라져버리는 것 같으니까, 그녀들은 힘들다.


2.
가장 주목받기 때문에 때로는 안받아도 되는 수모를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에 그녀들은 다 같이 울음을 터뜨린다. 순간, 여성 연예인들이 뭇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 내가 왜 불편하고 불안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녀들은 아마 자신이 직접 당하지 않았어도, 동료 여성 연예인이 수모를 당하는 것을 보고 못지 않게 괴로웠음이, 불안했음이 틀림없다.
그 공격은 '너도 이렇게 하기만 해봐. 우리가 정해놓은 이 선에서, 조금도 비껴나면 안돼' 이렇게 보이니까. 그녀들에게도, 나에게도.




3.
얼른 나이를 먹고 싶은, 모든 것이 어설프고 불안한 스물세살, 김옥빈
어느 것 하나 이뤄놓은 게 없는 것 같고, 지나가는 이십대가 아까운 내년엔 스물 여덟살, 김민희
꽤 성공했다고 자부했지만, 내려가는 것이 불안한 삼십대 중반, 최지우
나보다 잘 나가는 후배와 나이 들어가는 선배들 사이에서 허탈하고 생채기도 많은 삼십대 후반, 고현정
모두들 나이 들어가는데, 나이드는 것도 평가 받아야 하는 삶이 답답한 쉰살, 이미숙
이제 당당하기보다는 주변 분위기 파악을 먼저 하게 되는,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은 너무 많은 육십대, 윤여정

그녀들의 표정이, 말이, 감정이 하나하나 와닿아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샤넬과 디올을 걸치고 돈 페리뇽을 마시는 그녀들이....지극히 평범하고 가난한 나와 내 주위의 언니들이 했던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서로 이야기 나눌 수 있음에 기뻐한다.



사람들이  
그녀들의 아름다운 모습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녀들의 이야기를 많이 많이 듣고 공감까지 하게 된다면
'여배우들'을 비롯해서 나 같이 평범한 여자사람도 조금 살기 나아질지도 모른다.
by 땀c 2009.12.22 00:45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카드 광고가, 제가 여성으로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에 대해서 삼단으로 요약해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스물다섯, 여자에게 아름다움이란 존재의 이유다

존재의 이유가 아름다움이라니, 아름답지 않은 여성들을 그야말로 '열폭'하게 하는 말입니다.
네, 열폭이라고 해도 할 말 없습니다. 저는 세상의 기준으로 따지면 아름답지 않으니까요.
55는 커녕 44사이즈는 쳐다보지도 못하고, 화장도 잘 하지 않으며, 쌍커풀도 없고 코도 낮고, 머리도 동네 미용실에서 해서 부스스합니다. 그런데, 제가 세상에서 정해 놓은 기준대로 아름답지 않다고 해서 존재할 이유도 없다는, 그런 건가요 설마?
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은 여성들에게 순식간에 실존에 대해서 고민하게 합니다.

카드의 이름은 Sweet Dream. 전국 피부관리전문점과 화장품을 5% 할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커피전문점과 동물병원을 5% 할인하네요. 강요된 아름다움을 꿈꾸는 여성들의 꿈이 과연 달콤할까요? 그리고 스타벅스 다니고 애완견 안고 다니면 된장녀라더니, 이 광고에서는 스윗하다며 소비를 부추기고 있네요.


서른 여섯, 여자에게 내 아이란 질 수 없는 자존심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여성의 몫이라는 걸 확인하는 한편...
"질 수 없는 자존심"이라 하여 아이의 미래를 내 사회적 수준과 동일시합니다.
우리나라가 왜 사교육에 목을 매고 경쟁 교육에 앞장서는지 꿰뚫고 있는 광고라 할 수 있겠네요.
할인되는 항목은 학습지, 학원 등입니다.


마흔 일곱, 여자에게 여유란 가족에게 이바지한 보상이다.

여성에게 '보상'을 주겠다고 기뻐해야 하나요. 글쎄요. 여성으로서 저는 '가족에게 이바지'했다는 게 먼저 눈에 들어오네요. 평생 가족 돌보느라 고생했으니 이제 건강도 챙기시고, 골프도 좀 즐기세요. 이거 어찌 보면 아름다운 것 같지만, 그 전제가 무서운 겁니다. 여성에게 가족에게 이바지하라는 역할을, 규범을 내재하고 있으니까요.
가족을 돌보는 것이 절대 반대해야 하는 가치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족 중 여성, 특히 '엄마'에게만 기대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죠. 저 광고 카피는, 아마도 가족이 서로 이바지하는 관계라는 관점을 가졌다면 나올 수 있었을까요?



광고의 컨셉도 여자의 3가지 인생입니다.
Sweet 시리즈로, 여성의 인생이 달콤하다며 소비를 부추기지만,
그리고 실제로 여성들이 저러한 패턴에 맞춰서 소비를 하고 있고 저런 카드가 나오는 것을 환영할 수도 있지만...

이 사회가 어떤 규범과 가치를 여성들에게 기대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거 같아서 저는 참 씁쓸합니다.

 

* 이 글은 생활인블로거 네트워크 주권닷컴으로도 발행되었습니다.

by 땀c 2009.11.04 11:24

육아휴직은, 남성도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법은 사회가 변화할 때 가장 느리게 변한다고 하던데, 법에서 정하고 있어도 육아휴직을 쓰지 못하는 남성들이 많습니다.

여기, 육아휴직을 사용한 한 아빠의 이야기를 보면 왜 그런지 느낄 수 있습니다.

날아라, 갈치~! (초보아빠의 육아휴직 이야기)


이런 사회적인 인식(gender) 이외에도, 경제적인 이유도 클 것입니다. 육아휴직 기간에는 고용보험에서 받는 육아휴직급여 50만원 이외에 회사에서 휴직자에게 임금을 줄 의무는 없으니까요.. 맞벌이 부부의 경우에 여성보다 남성의 월급이 더 많은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남성이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죠.[각주:1]

다시 생각해보니, 사회가 제도를 못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제도가 활용하기에 부족함이 많은 것이겠네요. 맞벌이로도 애키우기 빠듯한 한국사회에서, 수입이 확 줄어든다면 감당이 어려우니..
무튼 이런 아쉬움을 남겨둔 채, 육아휴직을 사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용요건, 신청방법 
3세 미만
의 영유아를 가진 노동자가, 해당 사업장(기업)에서 1년 이상 근무한 경우[각주:2] 에 1년 범위 내에서 휴직할 것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육아휴직을 신청하려는 노동자는 휴직개시예정일의 30일 전까지 육아휴직 대상인 영유아의 성명, 생년월일, 휴직개시예정일, 육아휴직을 종료하려는 날(이하 “휴직종료예정일”이라 한다), 육아휴직 신청 연월일, 신청인 등에 대한 사항을 신청서에 적어 사업주에게 제출하면 되고, 법으로 정한 양식은 없으므로 회사에서 정한 양식을 사용하면 됩니다.


새로 생긴 제도
예전에는 육아휴직을 분할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했지만,
1회에 한하여 분할 사용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리고 육아휴직 대신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사용할 수 있는 제도가 신설되었습니다.


육아휴직 기간에는 불이익 금지! 
육아휴직 기간에는 합리적인 해고사유가 있더라도
휴직 종료 전에는 해고할 수 없습니다.[각주:3] 육아휴직 만료 후 복직을 시키지 않거나, 근무처를 불합리하게 변경하거나, 육아휴직기간을 승진․승급․퇴직금 또는 상여금 산정 연차휴가 일수 가산 등의 기초가 되는 근속 기간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은 불리한 처우로서 금지됩니다.


육아휴직급여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노동자에게는 고용보험에서
육아휴직급여(월 50만원)를 받을 수 있습니다.[각주:4] 육아휴직급여를 지급받으려면, 육아휴직급여 신청서, 육아휴직 확인서를 거주지나 사업장의 소재지 관할 고용지원센터에 제출합니다. 신청은 매 월 단위로 하고, 이번 달에 대한 육아휴직급여는 다음 달 말일까지 신청하면 됩니다.


육아휴직을 쓰면 회사에도 지원금이!

육아휴직을 허용한 사업주에게도 지원금이 나오므로, 육아휴직을 신청하면서 사업주에게 이를 알리는 것이 좋습니다. 육아휴직자 1인당 월 200,000원 의 육아휴직 장려금액이 사업주에게 지급되고, 육아휴직자 대신 대체인력을 채용하면 1인당 월 200,000원(우선지원대상기업의 경우에는 월 300,000원)이 지급됩니다.

  1. 같은 아이에 대해서 부인이 사용하고 나서 교대로 남편이 사용하는 것도가능합니다. 이것은 별론으로 하고... [본문으로]
  2. 「계속 근로 1년이 되지 않은 경우 사업주는 육아휴직을 부여하지 않아도 된다」고 정한 것이므로, 사업주가 임의로 육아휴직을 부여하는 것은 허용됩니다. [본문으로]
  3. 산전후휴가와는 달리, 휴직 종료 후 30일 동안의 해고 제한은 없습니다. [본문으로]
  4. 육아휴직급여를 받으려면, 동일 사업장에서 1년 이상 재직한 노동자가 육아휴직을 30일 이상 부여받고, 육아휴직 개시일 이전에 고용보험에 가입한 기간이 180일 이상이어야 합니다. [본문으로]
by 땀c 2009.09.08 15:31

 

노동법에는 여성과 관련된 법이 결코 적지 않다. 하지만 막상 상담이나 사건을 진행하다 보면 여성 관련법은 별로 활용되지 않고, 노동법 전문가들조차 내용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왜 여성 노동 관련법은 관심에서 멀어지는 걸까?


일단, 여성노동과 관련된 법은 대다수가 그 실효성이 떨어진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직장 내 성희롱 관련법이다. 여성노동자가 대다수인 전화상담원은 일상적으로 고객에 의한 언어폭력과 성희롱에 시달린다. 그런데 이전에는 고객에 의한 성희롱은 아예 법에 내용조차 없었고,  최근에 기껏 생긴 것이 「사업주는 “해당 근로자가 고객의 성희롱으로 고충을 호소할 경우”에, “배치전환 등”의 조치를 취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라는 내용일 뿐이다.


둘째로, 법은 있으되 그 법을 활용하기에는 너무나 큰 용기가 필요하고 감수해야 할 것이 많다. 여성노동 관련법 중에는 “모성보호”에 대한 내용이 양도 많고 그나마 강제성도 있는 편이다. 출산휴가, 즉 산전후휴가가 대표적인데, 산전후휴가 중에는 아무리 해고사유가 있다고 해도 해고를 절대 할 수 없고, 휴가 종료 후에는 휴가 전과 같은 업무 또는 같은 임금을 지급하는 업무에 복귀시켜야 한다 (근로기준법 제23조 2항, 제74조 5항).


임신하면 전쟁 시작!

효진씨(가명)가 바로 이런 법을 적용받는 경우였는데, 효진씨는 출산휴가를 신청하는 것부터가 전쟁이었다. 회사는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출산휴가를 허락하지 않았다. 결혼을 하거나 임신을 하면 곧바로 회사를 나가곤 했기 때문에 출산휴가를 줄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효진씨가 굴하지 않고 다시 휴가를 신청하자, “구조조정을 계획 중인데, 출산휴가로 「유휴인력」이 되어버리면 정리해고 대상 1순위니까 나중에 험한 꼴 당하지 말고 자진해서 사표제출을 하라.”는 요지의 답변이 돌아왔다.


대부분의 여성은 이쯤에서 포기하고 퇴사하거나, 억울해도 꾹 참고 일할 수 있다는 것에 감지덕지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효진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회사가 고용보험법상의 「우선지원대상기업」[각주:1]이기 때문에 출산휴가동안 「산전후휴가급여」[각주:2]90일분을 모두 고용보험에서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를 회사에 알려주었고, 회사에서는 태도를 바꾸어 휴가를 허락했다.


겨우 아이 낳고 돌아왔더니, 나도 모르게 마트가서 물건 팔란다.

한달 후 출산한 효진씨는,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는 동안 직원용 인터넷 게시판에 접속했다가 자신이 출산휴가 동안 배치전환되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효진씨는 CS(고객 상담 및 지원) 업무의 경력직으로 채용되었었는데, 대형마트에서 물품을 판매하는 현장판매직으로 발령이 난 것이다. 회사로부터는 어떤 개별 통지도 없었다. 휴가 종료 후 다시 출근한 효진씨에게 회사는 현장판매직으로 근무할 것이 아니면 회사를 그만두라고 종용했고, 효진씨가 이를 거부하자 효진씨는 거의 매일, 하루에도 여러 차례 관리자들에게 불려가 면담을 해야 했다. 면담에 불려다니느라 일할 시간도 부족했기 때문에 CS 업무를 맡은 다른 동료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효진씨는 동료에 대한 미안함까지 감수해야 했다. 게다가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서 육아휴직을 신청해야 했는데, 이에 회사의 회유와 압박은 더 거세졌다.


맘고생 몸고생 해가며 얻은 승리, 하지만..

결국 효진씨는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전보 구제신청을 접수했다. 회사는 처음에 그녀의 근무태도와 인간관계에 트집을 잡으며 인사이동이 정당하다고 주장했지만, 우리는 ①출산휴가 중에 개별 통지 없이 배치전환하였고, ②채용시 담당한 업무가 변경되는 것임에도 본인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고, ③현장판매직으로 근무하는 것은 임금, 근로시간 등에 불이익이 있고, ④출산 후의 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업무이고, ⑤CS 업무를 담당한 직원이 부족한 상황이므로 다른 업무에 배치할 필요성이 없다 는 등의 논리로 반박했다. 효진씨가 이길 가능성이 매우 컸다. 불리하다는 것을 느낀 회사가 원직으로 복직시키고 인사이동을 취소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사건이 종결되고 밖으로 나와서 그녀와 몇 시간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참 이야기를 하던 중에, 그녀가 망설이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요.. 제가 사실 둘째를 가졌거든요. 육아휴직 끝나기 두어 달 전에 출산인데... 이 과정을 다시 반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끔찍해서, 그냥 회사를 그만둘까 고민중이에요....”


둘째 가진 그녀는, 힘들기만 하다.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법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그녀가 잘못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승리의 기쁨을 누릴 수가 없었다. 법으로는 육아휴직 중에 다시 출산휴가를 쓰고 또 다시 육아휴직을 쓰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렇다면 그녀가 손가락질 받을 것이 너무나 뻔했던 것이다. 그 스트레스를 감당하더라도 권리를 당당하게 누리라고, 누가 감히 이야기할 수 있을까.


출산율이 떨어진다고 여기저기 아우성이면서, 출산, 육아, 일할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이 사회는 모순덩어리이다. 그나마 효진씨처럼 싸워보지도 못하고 조용히 회사를 그만두는 여성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녀들이 웃을 수 있게 하려면 법을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먼저 우리의 모순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월간 노동세상 8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1. 우선지원대상기업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기업으로, 고용보험법상의 각종 지원금에서 대기업보다 더 많은 지원을 받는다. 고용보험법 시행령 제12조. ①광업 : 300명 이하 ②제조업 : 500명 이하 ③건설업 : 300명 이하 ④운수․창고 및 통신업 : 300명 이하 ⑤제1호부터 제4호까지 외의 산업 : 100명 이하. 효진씨가 다니는 회사는 대형마트에 물류를 납품하는 유통업체로 직원이 80여명 이었으므로 ⑤에 해당되는 우선지원대상기업이었다. [본문으로]
  2. 산전후휴가는 출산을 전후해서 90일을 부여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 기간 중 최초 60일은 사업주가 유급으로 보장(통상임금지급)해야 한다. 우선지원대상기업은 통상임금의 90일분을 고용보험에서 지원한다 (최고상한액 월 135만원). [본문으로]
by 땀c 2009.09.02 16:12


물론, 마음의 평화를 바란다면 이런 영화를 선택하면 안 될 일이었다.
 
군포여대생 실종사건 등등을 뉴스에서 보는 것도 끔찍해서 최대한 관심에서 멀리했던 관계로 사건을 제대로 알지도 못했던 내가, 비록 픽션이나마 2시간 동안 꼼짝 않고 두 눈으로 여성에 대한 잔인한 행위를 지켜봐야 하는 것은, 예상된 잘못된 만남이었으므로 내가 알아서 차단했어야 했다.

출장에서 돌아와서 약속장소에 2시간이나 일찍 도착했기 때문에, 시간이 너무 애매해서, 2시간 동안 버티기에는 영화말고는 적절한 게 떠오르지 않았고, 시간이 맞는 영화는 <실종> 이것 단 하나뿐이었다고 해도....
보면 안됐었다.

하지만 영화의 소재 이외에는 영화에 대한 정보를 전혀 갖지 않고 들어가면서, 일말의 기대감은 있었다. 이 놈의 끔찍한 세상, 누가 더 인간이길 거부하고 엽기적인가 겨루는 거 같은 세상, 이 세상에 대한 어떤 시선을 나눌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는 있었다.


그러나.....




성폭행과 가혹행위의 테이크는 왜 그리 불필요하게 이어지는가? 가해자의 행위보다 성폭행을 당하는 여성의 표정이 왜 오랜 시간 클로즈업되어야 하는가? 나는 그 장면들에서, 여성의 고통에 대한 슬픔과 어루만짐보다는 그 가학적인 상황 자체가 선정적으로 이어지는 것에 대해 매우 불편함을 느꼈다.
인터넷에 떠도는 야동과 포르노의 주류는 강간 장면이 아니던가. 나는 야동을 보다가 울어버린 적이 있었다. 이것을 보고 흥분을 느낀다는 이들에게 커다란 분노를 느끼며, 그 영상 속 여성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는 것에 진저리를 쳤다. 강간당하는  여성의 고통스러운 표정 또한 쾌감을 일으키기 위한 것으로 쓰인다는 것에 분노하며, 나는 헛구역질을 했다. 헛구역질을 하다가, 눈물이 났다.

범인 이외에도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여성'이라는 존재에 대해 일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즉 성적인 대상으로 보는 것 또한 매우 기이하다. 개장수의 노골적인 시선과 말,  동네 사람들이 다방 레지를 바라보며 나누는 대화, 동네 사람들이 범인을 무시하는 이유가 '오입질'을 제대로 못하는 놈이라는 것, 동생을 데리고 간 감독의 시선과 행동......심지어 주인공을 도와주는 순수한 순경 총각 또한 주인공을 보며 "내 스타일인데...."라며 침을 삼키고, 단서를 제공해주며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다방 여성도 주인공의 동생이 젊고 아름다움에 괜히 시비를 걸었다. 우호적인 인물들조차 그런 관점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으로 봐서....감독은 여성을 한가지 관점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기보다는 세상이 이리도 험악하다, 그러니 알아서 조심해라, 라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이러한 혐의는 마지막 장면에서 결정적으로 도장을 찍는데....

동생이 몸매가 드러나는 노출이 심한 옷을 입었고, 영화 출연을 위해 감독과 1박도 감행하는 여성이라는 설정을 보고, 설마, 여성이 저렇게 했기 때문에 당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젊고 발랄한 여성들이 동생과 비슷한 옷차림으로 바닷가에 나타나, 낯선 노인에게 배를 태워달라고 한다. 70대 노인에게 배를 태워달라고 한 여성들이 바다 한가운데서 성폭행당하고 살해도 당했던, 실제 사건을 암시하며 영화는 끝난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생길 때마다 세상의 모든 부모는 딸자식이 옷을 수수하게 입고 활동도 자제하길 당부한다. 이런 관점은 부모의 사랑일 때는 그나마 고맙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본질적으로는 범죄를 당한 여성이 원인을 제공했다는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하고, 가해자는 당당하고 피해자가 자신을 질책하게 하며, 여성이 소극적으로 사는 걸 당연하게 만든다. 

영화에서 우리나라 치안의 헛점과 미비를 다루는 것은 아주 순간이며, 영화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다. 영화의 대부분은 말초신경을 꼿꼿이 자극하는 내용이고, 여성의 시선은 실종되었고,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매우 슬퍼졌다.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아드레날린 분비에 사용되지 않는 세상만 되어도, 참 살만할텐데.

by 땀c 2009.04.03 17:31
체인질링이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주제-  "공권력이 말하는 진실이 과연 진실일까" 

이 자체만으로도 주변에 매우 권하고 싶은 영화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다른 의문을 던져주기 때문에 저는 이 영화가 매우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지금 세상이 미쳤다고 말하는 그녀들은 과연 미쳤을까?"



검은 우산의 무리, 의심

크리스틴은 기자들 앞에 처음으로 진실을 알리기 위한 시도를 합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크리스틴.
기자들의 우산은 모두, 검은 색입니다.



그냥 스쳐가는 장면이었을 뿐인데, 저는 이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실제로 언론은 그녀가 "가짜 아들"과 찍은 사진을 내보냈고, 언론이 말하는 것이 진실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크리스틴은 이미 느꼈죠... 크리스틴은 언론과 세상이 모두 검게 보였던 것은 아닐까요. 캄캄하고 냉혹한 세상.


정신병원에 갇히는 여성들, 여성과 광기

정신병원에 강제 수용된 크리스틴은, 캐롤 덱스터를 만납니다.
창녀, 라고 불리는...그녀.  
사는 장소도, 하는 일도, 만나는 사람도 달랐던 그녀들이, 같은 이유로 정신병원에서 만나게 됩니다.

그녀가 크리스틴에게 이야기하죠. 이 곳에서 무사히 살아서 나가는 법과, 여자들의 말을 왜 세상은 믿어주지 않는가에 대해서.

무사안일을 강조하던 캐롤은, 크리스틴이 폭력을 당하자 달려들어서 그 댓가로 전기충격기의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그녀에게는 전기충격기의 무시무시한 폭력과, 창녀 주제에 감히, 라는 모욕도 쏟아지죠..

이 전기충격기 장면은 사실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아마 제가 "여성과 광기"라는 책을 보지 못했다면 저런 일이 정말 사실일까 하고 한번쯤 의심해봤을 겁니다. 그러나 영화는 그녀들이 정신병원에서 당했을 일에 대해서 반의 반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이 책은 정신병원에 가게 된 그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왜 여성은 미치게 되는가? 누가 그들을 미쳤다고 규정하는가? 정신병원에서 그녀들은 전기충격요법 뿐 아니라 하녀처럼 착취당했으며 성관계까지 요구 당했다는 것.., 영화를 보며 다시 아프게 기억해야 했습니다.

코드12 여성들이 풀려나게 되면서 크리스틴과 캐롤이 나누는 눈빛 속에는,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죠..
세상은 여전히 잔인할 것이지만, 당신을 만나서 잘 해볼 용기를 얻었다, 고 말하는 듯 합니다.



모성을 버렸기 때문에 갇히는 여성들, 그리고 나혜석

크리스틴이 정신병원에 수용당하는 이유는, "애써 찾은 아들을, 자신의 자유와 쾌락을 위해 외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장면에서도 왜 여성들이 미쳤다고 규정 당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게 합니다. 여성의 몫으로 주어진 모성에 충실하지 않는 나쁜 년이라는 것이죠. 남성이 그랬다면, 아동학대죄로 감옥에 갔을 텐데, 크리스틴은 모성을 저버렸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에 가게 됩니다.

이 대목에서는, 비극의 여인 나혜석이 생각납니다.. 그녀는 자유연애를 즐기며 방종하고 이혼을 당당하게 생각한다며 비난당했던 대표적인 신여성입니다. 당시 신여성은 기존 제도가 만들었던 전통적인 여성상에서 한참 벗어나므로 무수한 손가락질을 당했죠. 나혜석이, 당시의 신여성들이 정말, 애들은 내팽개치고 이기적인 행위만 일삼았던 "미친년"들이었을까요?

친구여, 세상엔 그런 여인들이 있었다고 하지,
가면을 벗어 조용히 응접실 탁자 위
가족사진 옆에 포개어 놓고
나의 시간도 아니고
너의 시간도 아닌
'가정의 날'이라는 영원한 반공일(半空日) 같은
어정쩡한 주부의 직업을 닫고
에미는 선각자였느니라----

- 김승희, "나혜석컴플렉스" 중



모성은 그냥 당연히 생기는 게 아니야


안젤리나 졸리가 보여준 절절한 모성애 연기가 일품이었다는 극찬을 많이 보게 되는데, 좀 아쉬운 평입니다. 제가 크리스틴을 보며 감탄했던 이유는, 단지 "선천적인" 모성이 아니라 공권력에 저항하는 용기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한 연대와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에 대한 책임감을 감당하지 못하고 떠나가버린 월터의 아버지와는 결코 맺을 수 없었던, 월터와 크리스틴 두 사람의 연대감, 그리고 그렇게 자란 월터는 자신의 목숨이 위험함에도 다른 사람을 구했던 너무나 용기 있고 사랑스러운 아이라는 것, 이런 것 때문에 크리스틴은 월터를 찾는 것을 멈출 수 없었을 겁니다. 모성이란 어디선가 짠, 하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by 땀c 2009.02.20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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