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빛나던 지식의 별들은 어디로 갔을까.

지난 9일 방송된 KBS2 <스펀지 2.0>에서는 "가슴이 커지는 벨소리"가 소개되었다. 일본의 심리학자 히데토 토마베치라는 사람이 발명한 것인데,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뇌에서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젖샘이 발달, 가슴이 커진다는 것이다.

실험에 참가한 연예인이 하루 20회씩 '가슴을 생각하며' 2주간 이 벨소리를 듣자 가슴이 0.2cm 커졌단다. 방송 후 인터넷은 뜨겁게 달아올랐고, 발빠른 음원회사는 기존에 나와있던 아기 울음 벨소리를 '가슴이 커지는 벨소리'로 이름을 바꿔서 내보냈다.

"가슴이 커지는 벨소리가 있대!"

"정말? 들어봐야겠는 걸?"

이렇게 가볍게 웃으면서 넘어갈 수도 있다. '예뻐질 수 있으면 좋은 거 아냐?'라며 '좋은 게 좋은 거지'하는 심정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 찝찝함은 무엇일까.

실험에 참가한 연예인 김지혜는 농담처럼 말했다. 자신은 가슴이 작아도 그다지 마음 고생이 심하지 않았는데 "남편이 마음 고생이 심했다"고.

자고로, 농담이 재미있는 이유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어서다. 여성들의 가슴을 향한 열망이 어디로부터 시작되는가, 그 핵심을 찌르는 말이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욕망이 나를 망친다



<스펀지 2.0>에서는 대한민국 여성들의 가슴 사이즈가 평균 75A~80A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방송에서는 이것이 마치 "안타까운 현실"인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현실"인 것이며, 대한민국 여성들의 "자연스러움"일 뿐이다.

"자연스러움"을 거부하는 것은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한다. 영화 <색, 계>가 상영 당시 여러 사람을 놀라게 했던 것 중 하나는, 주인공 탕웨이가 정사신에서 당당히 보여주었던 소위 '겨털(겨드랑이 털)'이었다. 탕웨이의 '겨털' 때문에 정사신에 전혀 몰입이 안 되었으며, 성적 감흥을 못 느꼈다는 영화 감상 후 뒷 이야기를 종종 볼 수 있다.

몸에서 나는 털은 다 이유가 있어서 나는 것일 텐데, 특히 땀이 많이 나는 부위여서 중요한 기능을 하는 겨드랑이 털을, 우리는 혐오한다. 여성들은 데이트 전, 옷 입기 전, 점검하고 삭제한다. '외모' 혹은 '사회의 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만'하는 이런 일들은 귀찮을 뿐 아니라 피부에도 몹쓸 짓이다.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이란, 개인 한 사람이 벗어나기 매우 힘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위력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고,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을 향한 개인의 노력은 "열정"인 것으로 칭찬받는다. 그런 '열정'이 없으면, 그 사람은 암묵적 또는 가시적으로 도태된다. 이 현상은 특히 가진 것 없는 사람일수록 속박하고, 그 기준도 매우 충족하기 힘들다. 가슴은 키워야 하지만, 살은 빼야 하는 수많은 여성들은 알고 있다. 두 가지를 동시에 충족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속박은 대부분 "자기 검열"의 형태로 다가오기 때문에, 우리는 대부분 그것이 자신의 선택인 것으로 착각한다. '가슴이 커지는 벨소리'를 하루에 20회씩 시간을 투자해서라도 듣고 싶어지는 것은, 정말 나의 욕망일까.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욕망에 내가 맞춰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볼 일이다.

우리의 평균은 어쩔 수 없는 75A, 또는 80A이며, 살이 찌면 가슴도 커지고 살이 빠지면 가슴도 작아지는 자연인일 뿐이다. 자기 검열이 심해지면 불필요한 스트레스와 자괴감에 빠진다. 그건, 나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슴이 커지는 벨소리가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는 내게, 한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있는대로 살아~" 

정답이에요, 언니.


by 땀c 2010.04.13 16:31

남자는 초콜릿이다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정박미경 (레드박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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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라는 말은 가히'빨갱이'라는 말보다 더 위협적이고 불편한 단어다.
'꼴페미'들은 못생기고, 남자를 혐오하거나 무시하고, 된장녀인데다가 성적으로는 발랑 까졌다는 편견이 덧씌워진다.
그녀들이 연애를 한다? 웬만한 남자들은 그녀들의 연애 파트너를 동정할 지도 모른다. 쯧쯧..... 사내 자식이 어디 만날 여자가 없어서 페미를........

한국 사회의 '페미포비아'에 길들여져 있다면, 이 책은 아주 불편하게 다가갈지도 모른다. 평범한 연애공식에서 여성에게 대입되는 역할에 의문을 가지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가득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고민은, 굳이 페미니스트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정하지 않았을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모두 다른데, 모두 비슷하다

그녀들의 모습은 편견을 덧씌우기에는 외모도 성격도 경험도 달라 천태만상이다. 그런데 그 천태만상 속에 불쑥불쑥 내 모습이 섞여 있다. 마치, 애니어그램을 하면서 1번부터 9번까지 내 모습을 모두 발견하고 혼란스러운, 그런 느낌이랄까. 그녀들은 모두 다른데, 모두 내가 알고 있는 누군가와 또는 나와 닮아 있다.

내 모습을 그 속에서 발견한다는 건 꽤 불편한 느낌이다. 나조차 내가 그런 생각 때문에 그런 연애를 했다는 걸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권위적이고 폭력성까지 갖춘 '나쁜 남자'가 내 앞에서만 보여주는 약한 모습에 뻑이 가서, 내가 그를 밝은 곳으로 이끌어주고 있다고, 그건 나 밖에 못하는 것이라고 착각했다. 잘난 남자의 잘난 지식에 끌려서 그가 나를 보아주는 것에 우쭐했다. '디디'와 '이후'의 생각을 따라가다가 흠칫 놀라는 것은 나뿐일까.

삼십대에도 연애 상담은 필요하다

삼십대에는 모든 게 안정적일 줄 알았어, 이런 푸념에는 연애에 대한 것도 포함되어 있다.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의 삼십대들은 이십대보다 더 치열하게 연애에 대한 고민이 많은 듯하다. 삼십대 여성의 99퍼센트는 가난하고, 쌓아놓은 건 나이밖에 없고, '결혼할 거면 지금해야 한다'라는 기로에 서 있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연애다운 연애를 한 번도 못해보고, 섹스 경험도 없이 삼십대 중반을 맞은 직장 동료 언니,
연하남과 만나다가 자신의 나이만 끊임없이 자각하며 자존감이 떨어지는 언니,
소개팅을 나가면서 이제는 예전처럼 남자들에게 어필할 수 없는 건가 고민하는 친구,
결혼은 하고 싶지 않은데 사랑은 절대 필요한, 그런데 주변에는 유부남이나 아저씨밖에 없어서 선택의 폭이 줄어감을 항상 한탄하는 언니,
착한 남자보다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자신 때문에 항상 고생이라고 말하지만, 결국은 나쁜 남자를 선택하는 언니.

이 책은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그녀들을 어떤 식으로든 응원해준다. 똑똑하게 남자가 가진 것을 이용하되 그에 속하지 않는 법을 아는 초인에게는 '악녀'라는 이미지가 갖는 자유로운 이중성을 이용하면서 가부장제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이라고 북돋워준다. 연하남을 끝없이 돌보기만 하는 것에 지치고 자존감도 떨어진 지아에게는, 자기 안의 돌봄의 욕구를 인정하는 것은 '사랑스러운' 것이며, '이것만은 용납할 수 없다'는 자신만의 데드라인을 정해서 자존감을 지키라는 따뜻한 충고도 더해준다. 내 발로 잘난 남자의 여자가 되겠다고 선택해서 이용만 당했던 자신 때문에 자괴감에 빠진 이후에게는, '진보 마초'란 없으며 그는 '마초'일 뿐이라고 그녀를 위로한다.

책의 말미에, B급연애를 탈출하기 위한 9가지 충고가 곁들여져 있다. 그 중 '자기 욕망에 최선을 다라하'는 말은 최근 이별을 겪은 언니와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말이다.

'남자에게 매달리는 여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여자들에게 매우 뿌리 깊다. 남자에게 매달리는 여자는 비운의 여자이고, 그런 여자는 죽어도 되기 싫은 것이다.

쿨한 여자, 좋다. 그런데 무엇이 쿨한가?

나를 더 사랑해달라고 징징대든, 떠나가는 남자에게 울고불고 매달리든,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그래서 미련 없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진짜 쿨한 것이고 자존감을 드높이는 일이라는 걸 명심하자. 매달리는 여자에 대한 사회적 비하를 내면화하게 되면 정말 솔직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질 수 없다. 이는 자기 욕망을 향해 거침없이 질주하는 여자를 통제하려는 남성적 사회에 속는 것이다.


by 땀c 2010.03.17 19:28

뒤늦게 알았다. 스펀지 신년특집 "내조" 사태를...

KBS 스펀지에서 1월 1일 신년특집으로, 유부남 2103명에게 “아내를 소녀시대보다 예뻐 보이게 만드는 최고의 내조는?”이라 물었다 한다.

아하...그냥 "마누라"는 "소녀"들만큼 젊지도 섹시하지도 애교스럽지도 않아서 자신의 성적 판타지는 "마누라"가 아닌 "소녀시대"가 충족시켜준다는 전제를 당당히 깔고 있는, 저 질문도 질문이지만..

대답의 내용이, 썩 유쾌하지는 않은데 (사실은, 매우 불쾌한데)
이러한 답변을 보고 예능 프로라는데서 웃고 즐겼다는 거 아닌가.

<최고의 내조>
4위 - 술먹은 다음날 “여보, 꿀물 드세요”라고 꿀물을 대령하는 아내.
3위 - "설거지는 그냥 두세요”라며 집안일 신경 안 쓰게 해주는 아내.
2위 - “여보, 밖에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오세요”라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도록 배려하는 아내.
1위 - 남편보다 먼저 출근하며 “여보, 저 오늘도 돈 많이 벌어올게요”라고 웃어 보이는 맞벌이 아내


1위가 "맞벌이"가 되었다는 점을 보면, 남성들도 자신이 가정 경제를 책임지는 데 많은 부담과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안다. 이 시대에 직장생활을 비롯한 경제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남성들의 어깨에 부담이 지워진 것도 사실이라는 것도.

그런데, 나머지 순위를 보면 그렇게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뚝, 줄어들고 만다. 슬프다. 우리는 동지적 관계로 이 MB시대, 신자유주의 시대를 헤쳐나가야 하는데, 나는 동지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꿀물을 대령"해야 하고, 집안일 "신경 안 쓰게" 내가 다 알아서 해야 하고, 힘든 사회생활 하는 그이가 스트레스 풀 시간을 보장하고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나도 사회생활을 한다!

여성의 가사노동시간과 남성의 가사노동시간을 비교한 (차마 믿기 힘든) 유명한 통계가 있다. 통계청의 2007년 조사에 따르면 부부가 맞벌이일 경우 부인의 가사노동 시간은 하루 평균 3시간 28분으로 남편(32분)의 6.5배에 이른다고 한다.
(출처 - 아버지가 육아와 가사에 참여할 때 아이는 이렇게 달라진다 http://miznet.daum.net/contents/mizmom/parenting/parentguide/father/view.do?cateId=9819187&docId=15959)

1위부터 4위까지가 종합된 것을 원하는 건 아니다, 라는 "변명"이 의견으로 개진되는 거 같은데... 통계를 100% 믿을 수야 없는 일이지만, 저 통계는 1999년도에도 저랬다. 2002년에도 그랬다. 숫자가 바뀔 수는 있어도, "맞벌이 가정에서도 부인의 가사노동시간이 남편보다 많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방송 내용이 저 통계를 입증하고 있다.

그런데, 스펀지 신년특집에서는  "최악의 내조"도 꼽았다고 한다.

"꾸미지도 않고 저축만 할 때"


'집안일은 했으면 좋겠지만, 집에만 있는 건 별로다.'
'알뜰했으면 좋겠지만, 외모를 안 가꾸는 것도 별로다.'

아이고야....

이쯤에서 '루저의 난'이 안 떠오를 수가 없다.
미수다에서 한 대학생이 몇 초동안 내뱉은 말을 가지고 온 나라가 들썩였다. 2009년 하반기 대한민국에서 루저라는 말을 모르기는 어려웠다. '루저녀'가 워낙 개념없이 보였기 때문에 '루저의 난'은 정당해보였고, 그들의 분노에 의문이라도 가질라치면 돌이 수없이 날아왔다.

그런데 스펀지에서는 적어도 몇 십분동안, 동영상까지 만들어가며 고정된 성역할을 정성껏 퍼뜨렸다. 그것도 정초부터 방송했다. 꽤 많은 여성들, 가부장제를 비판하는 남성들이 이러한 방송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런데 '난'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난'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다.
'루저의 난'은 외모의 절대기준을 강요하는 사회적 관점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었지만, 한 개인에 대한 폭력성도 짙었고, 성대결로 가면서 역시나 감정만 상하고 결론은 산으로 갔다. 내가 '여성들이여! 파업하라! 집안일에서 당장 손 뗍시다!' 라고 선동이라도 할라치면 역시나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상한 마음을 추스른다. 마음을 추슬러도 스펀지 신년특집은 수신료가 아까운(더군다나 2,500원에서 5~6천원이나 올리겠다니-ㅁ-;;) 방송임에는 틀림없지만, 분노를 접고, 호소한다.
저 방송이 정말 유쾌하고 보편적인 감성인 것으로 계속 되어야 하느냐고.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다시 되새겨본다면 더욱 수많은 사람들이 유쾌할 것이라고. 티비를 보면서도, 실제 삶에서도.

 * 이 글은 팀블로그 주권닷컴(http://blog.ohmynews.com/peoplepower)으로도 보냈어요.

by 땀c 2010.01.12 15:45



가진 것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숨어있는 애환, 뭐 그런 거겠지.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그녀들이 "쏟아내는" 이야기들에 빨려들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1.
자기중심적이고
콧대높고
질투심 많고
인내라고는 모른다, 라고 보이는
여배우들.

예쁘다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안 예쁘다 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보다 행복한 것 같지만
사실은 이 사회가 가리키는 기준에 가장 많이 부합되는 그녀들이어서 
그 누구보다 불안하다.

피부가 좋아야 하고
날씬해야 하고
깔끔해야 하고
때로는 털털해야 하고
이혼하면 안 되고
때로는 사랑도 하면 안되는

이러한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은 애초에 그저 평범하게 살지만
그녀들은 이 조건들을 충족하는 긴장 위에 살기에 '최고'라고 칭송받고 사는 것이다.

그녀들은 말한다. 여배우들이 함께 만나지 않는 이유는, 단지 질투가 아니라 자신이 덜 주목받는 것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누구보다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맞춰서 살면서
자기 자신의 중심은 놓지 않고 살아야 하기에
그렇지 않고는 못견디니까, 어느 덧 자신은 사라져버리는 것 같으니까, 그녀들은 힘들다.


2.
가장 주목받기 때문에 때로는 안받아도 되는 수모를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에 그녀들은 다 같이 울음을 터뜨린다. 순간, 여성 연예인들이 뭇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 내가 왜 불편하고 불안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녀들은 아마 자신이 직접 당하지 않았어도, 동료 여성 연예인이 수모를 당하는 것을 보고 못지 않게 괴로웠음이, 불안했음이 틀림없다.
그 공격은 '너도 이렇게 하기만 해봐. 우리가 정해놓은 이 선에서, 조금도 비껴나면 안돼' 이렇게 보이니까. 그녀들에게도, 나에게도.




3.
얼른 나이를 먹고 싶은, 모든 것이 어설프고 불안한 스물세살, 김옥빈
어느 것 하나 이뤄놓은 게 없는 것 같고, 지나가는 이십대가 아까운 내년엔 스물 여덟살, 김민희
꽤 성공했다고 자부했지만, 내려가는 것이 불안한 삼십대 중반, 최지우
나보다 잘 나가는 후배와 나이 들어가는 선배들 사이에서 허탈하고 생채기도 많은 삼십대 후반, 고현정
모두들 나이 들어가는데, 나이드는 것도 평가 받아야 하는 삶이 답답한 쉰살, 이미숙
이제 당당하기보다는 주변 분위기 파악을 먼저 하게 되는,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은 너무 많은 육십대, 윤여정

그녀들의 표정이, 말이, 감정이 하나하나 와닿아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샤넬과 디올을 걸치고 돈 페리뇽을 마시는 그녀들이....지극히 평범하고 가난한 나와 내 주위의 언니들이 했던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서로 이야기 나눌 수 있음에 기뻐한다.



사람들이  
그녀들의 아름다운 모습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녀들의 이야기를 많이 많이 듣고 공감까지 하게 된다면
'여배우들'을 비롯해서 나 같이 평범한 여자사람도 조금 살기 나아질지도 모른다.
by 땀c 2009.12.22 00:45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카드 광고가, 제가 여성으로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에 대해서 삼단으로 요약해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스물다섯, 여자에게 아름다움이란 존재의 이유다

존재의 이유가 아름다움이라니, 아름답지 않은 여성들을 그야말로 '열폭'하게 하는 말입니다.
네, 열폭이라고 해도 할 말 없습니다. 저는 세상의 기준으로 따지면 아름답지 않으니까요.
55는 커녕 44사이즈는 쳐다보지도 못하고, 화장도 잘 하지 않으며, 쌍커풀도 없고 코도 낮고, 머리도 동네 미용실에서 해서 부스스합니다. 그런데, 제가 세상에서 정해 놓은 기준대로 아름답지 않다고 해서 존재할 이유도 없다는, 그런 건가요 설마?
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은 여성들에게 순식간에 실존에 대해서 고민하게 합니다.

카드의 이름은 Sweet Dream. 전국 피부관리전문점과 화장품을 5% 할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커피전문점과 동물병원을 5% 할인하네요. 강요된 아름다움을 꿈꾸는 여성들의 꿈이 과연 달콤할까요? 그리고 스타벅스 다니고 애완견 안고 다니면 된장녀라더니, 이 광고에서는 스윗하다며 소비를 부추기고 있네요.


서른 여섯, 여자에게 내 아이란 질 수 없는 자존심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여성의 몫이라는 걸 확인하는 한편...
"질 수 없는 자존심"이라 하여 아이의 미래를 내 사회적 수준과 동일시합니다.
우리나라가 왜 사교육에 목을 매고 경쟁 교육에 앞장서는지 꿰뚫고 있는 광고라 할 수 있겠네요.
할인되는 항목은 학습지, 학원 등입니다.


마흔 일곱, 여자에게 여유란 가족에게 이바지한 보상이다.

여성에게 '보상'을 주겠다고 기뻐해야 하나요. 글쎄요. 여성으로서 저는 '가족에게 이바지'했다는 게 먼저 눈에 들어오네요. 평생 가족 돌보느라 고생했으니 이제 건강도 챙기시고, 골프도 좀 즐기세요. 이거 어찌 보면 아름다운 것 같지만, 그 전제가 무서운 겁니다. 여성에게 가족에게 이바지하라는 역할을, 규범을 내재하고 있으니까요.
가족을 돌보는 것이 절대 반대해야 하는 가치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족 중 여성, 특히 '엄마'에게만 기대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죠. 저 광고 카피는, 아마도 가족이 서로 이바지하는 관계라는 관점을 가졌다면 나올 수 있었을까요?



광고의 컨셉도 여자의 3가지 인생입니다.
Sweet 시리즈로, 여성의 인생이 달콤하다며 소비를 부추기지만,
그리고 실제로 여성들이 저러한 패턴에 맞춰서 소비를 하고 있고 저런 카드가 나오는 것을 환영할 수도 있지만...

이 사회가 어떤 규범과 가치를 여성들에게 기대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거 같아서 저는 참 씁쓸합니다.

 

* 이 글은 생활인블로거 네트워크 주권닷컴으로도 발행되었습니다.

by 땀c 2009.11.04 11:24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박민규 (예담,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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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열등감의 진화


난 어렸을 때, '좋아하는 것'에는 무엇을 적었는지 가물가물하지만,
'싫어하는 것'에 적었던 것이 문득 생각난다. '거울 보기'

중학생 무렵이었을까? 거울을 멍하니 보다가 난 왜 이렇게 못생겼을까..싶어서 문득 눈물이 난 적이 있었다.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너는 다리가 못생겼으니까 치마를 입으면 안돼' 라고 했었고
세살 아래 남동생은 지금도 '누난 얼굴이 안되니까 직업이라도 좋아야 하는데.'라고 이야기해서 엄마(나)의 열등감에 부채질을 한다.

대학에 가서 '여성주의'라는 것을 접하고, 열등감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면서 내 열등감은 변종을 겪게 된다. 여성주의를 말하면서 가장 가슴을 아프게 하는 말은  '꼴페미들은 못생겼으니까 저래' ,'오크녀들의 열폭'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여성주의자도 못생긴 것은 아니다, 예쁜 사람 많다, 라는 이상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나만 이상한 게 아니었는지, 몇 년 전에는 "네 안의 여신을 깨우라"는 유명한 여성 신학자가 어떤 행사에서 글로리아 스타이넘을 소개하며 "얼굴도 예쁜 페미니스트"라고 이야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우리는, 왜 이렇게 외모에 가치를 두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가는 걸까..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말기"

요한은 말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기 때문에, 99%의 인간이 1%의 인간에게 꼼짝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내가 볼 땐 그래. 진짜 미녀라고 할 만한 여자도, 진짜 추녀라 불릴 만한 여자도 실은 1%야. 나머진 모두 평범한 여자들이지. 물론 근사치야 있겠지만 그런 거라구. 거울을 보고 그래도 나 눈은 괜찮은 편인데 역시 이마와 턱은 아니야, 이 각도에서 보면 괜찮은 얼굴인데 문제는 종아리야, 나 입술은 예쁘다고 생각하는데 코와 어울리지 않아, (중략)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고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고... 결국 그게 평범한 여자들의 삶인 거야. 남자도 마찬가지야. (중략)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고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 민주주의니 다수결이니 하면서도 왜 99%의 인간들이 1%의 인간들에게 꼼짝 못하고 살아가는지. 왜 다수가 소수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야. 그건 끝없이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기 때문이야.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174p

'나'는 일하는 백화점에서 모두가 예쁘다고 부러워하는 '군만두'를 만난다. '군만두'를 모두가 예쁘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탑스타 여배우가 나타났을 때 '군만두'는 화려한 양장피 옆의 군만두처럼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배우를 부러워한다.

부끄러움과 부러움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뿐만 아니라 모두의 자유를 얽매이게 하고 속박시킨다고 소설은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부끄러움과 부러움은 자본주의의 동력이야.

'군만두'가 나타나서 백화점 직원들은 스펙의 평균을 상승시켜 버렸다. 작가 박민규는 작가의 말에서, '이 몹쓸 스펙의 사회'라고 이야기한다. 이 정도는 걸쳐야, 이 정도는 발라야, 이 정도는 몰아야, 이 정도는 벌어야... 결국엔 이 정도는 살아야...

평균을 올리는 것은 누구인가. 그것을 부추기는 것은 누구이며, 그로 인해 힘들어지는 것은 누구인가...또 그로 인해... 이익을 보는 것은 누구인가, 나는 생각했었다. 자본주의의 바퀴는 부끄러움이고, 자본주의의 동력은 부러움이었다. 닮으려 애를 쓰고 갖추려 기를 쓰는 여자애들을 보며 게다가 이것은 자가발전이다, 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부끄러움과 부러움이 있는 한

인간은 결코

자본주의의 굴레를 빠져나가지 못한다.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308p.

내 자신이 부끄러워 견딜 수 없고, 나보다 나은 스펙을 부러워하고, 나보다 뒤떨어진 스펙을 멸시하면서 보다 나은 스펙을 갖추기 위해 돈을 써댄다. 그것이, 자본주의의 동력이다.


미녀를 향한 호의, 그 쓸쓸함

'나'는 군만두가 예쁘다는 이유로 그 아이를 향한 호의가 불편하다. 아니, 쓸쓸하다.
사랑하는 '그녀'가 특별하게 못생겼다는 이유로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고, 그것이 결국엔 나 역시도 속박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녀에게 주어지는 세상의 관대함에 나는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뭐랄까, 그것은 부자에게 주어지는 세상의 관대함과도 일맥상통한 것이란 기분이 들어서였다. 관대함을 베푸는 것은 누구인가, 또 그로 인해 가혹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누구인가... 나는 생각했었다. 불쾌했다기보다는

이상할 정도로

쓸쓸한 마음이었다.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315p

요즘 뜨는 마이크로 블로그인 '트위터'에서는 '미녀 트위터리안'을 서로 소개해주고 '인증'을 거쳐 앞다투어 follow한다. 어렸을 때 거울을 보고 울었던 경험이 있는 나는, 조용히 혼자서 '열폭'을 한다. 그러한 것이 불편하다, 고 이야기하면 공개적 '열폭'이 되므로,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중간이나마 가기 위해 튀지 않는 것에 만족한다.  

관계를 맺을 때부터 세상의 멸시와 따돌림을 겪어온 '그녀'가 겪었던 경험을 풀어놓을 때마다, 나는 눈물을 뚝뚝 흘려야 했다. 나 역시 그녀와 같은 상처를 받았고, 그러면서 나 역시 그녀를 따돌렸던 사람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에는... 대접을 받아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인간이 누구나 같을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억울한 점이 있다면... 그런 것입니다. 왜 균등한 조건이 주어진 듯, 가르치고 노력을 요구했냐는 것입니다. 더불어 누군가에게 잣대를 들이댄다면... 그것은 분명 노력으로 극복이 가능한 부분이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한 번도 스스로의 인생을 평가받지 못했습니다. 저는 오로지 스스로의 태생만을 평가받아온 인간입니다.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280p

성실히 노력할 줄 알고, 현명하고, 예술을 사랑했던 그녀는... 자신의 능력이 아닌 외모로만 평가를 받아왔다. 어렸을 적 읽었던 [박씨부인]처럼, 그녀가 나라라도 구하지 않는 이상 그녀를 돌아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장미란의 역도에 온 나라가 환호하면서도, 막상 그녀가 모 항공사의 광고모델을 하자 대부분 갸우뚱하는 것이 현실이다.

부끄러워하고 부러워 하는 것이 나 자신을 힘들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버렸음에도, 이것을 그만두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세상을 이기는 개인은 없으니까. 하지만 반드시 기억하고 살 일이다. 하멜른의 피리를 따라 강으로 뛰어드는 쥐처럼 되버리지 않으려면, 적어도 내가 어디로 가고 있다는 것 정도는 자각해야 되는 것 아닐까.

누군가의 외모를 폄하하는 순간, 그 자신도 더 힘든 세상을 살아야 한다. ... 사는 게 별건가 하는 순간 삶은 사라지는 것이고, 다들 이렇게 살잖아 하는 순간 모두가 그렇게 살아야 할 세상이 펼쳐진다. 노예란 누구인가? 무언가에 붙들려 평생을 일하고 일해야 하는 인간이다.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310p


 * 이 글은 생활인 블로거 네트워크 주권닷컴(http://blog.ohmynews.com/peoplepower)으로도 발행되었습니다.

by 땀c 2009.10.07 18:48
사회부 기자로 일하고 있는 친구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사회부 사건은 성폭력 사건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것을 모두 기사화하지는 않는다고.

가족들이 원치 않는 경우가 많아서 기사를 올려도 가족의 요청으로 곧 내리게 되기도 하고,
기사를 싣더라도 사건이 일어난 사실관계는 묘사하지 않고, 최대한 간략하고 일반적인 팩트만 싣는다고 했다.
기사가 되는 것보다 취재원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더 우선이니까.

"나영이 사건"이 이토록 공론화되고 있는 것을 보고, 며칠 째 마음이 복잡하다.
무엇이 나영이와 그 가족들에게 더욱 좋은 것일까.

그 피해의 끔찍함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나 슬퍼하고 분노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긴 하다. 특히, 아이의 부모가 보험금을 탔다는 이유로 자치단체의 지원금도 환수되고 생활보호대상자에서 제외되었다는 사연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의 항의전화도 있었다. (조사결과 일시 중단이 있었으나 지원 재개하고, 지원금은 미환수되었다고 함)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참 많다.
 (관련글 - http://www.journalog.net/psrabell/17859 )

하지만, 우린 아직도, 성폭력 피해자가 숨어들고 더욱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나영이라는 이름이 가명이긴 하지만.. 수많은 세상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어느 덧 아이가 살고 있는 동네도 드러나고, 아이가 당한 피해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결국 그들은 세상 앞에 드러나게 되었다.

이 사건을 이야기해야만 한다면, 그래서 사회가 좀 더 아름답게 되도록 해야 한다면..
아이가 겪은 피해를 중심으로는 이야기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 피해가 너무나 끔찍했기에 많은 사람이 분노했고 이 사건이 알려지긴 했지만....그 진실이 자극적인만큼 왜곡과 호기심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피해의 정도가 큰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모든 (성)폭력은 피해의 정도와 관계 없이 피해자 입장에서는 끔찍한 기억이고,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건 마찬가지다.
 
이 사건을 이야기해야만 한다면,
비록 가명이지만 피해자의 이름을 부르지 말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의 이름을 불렀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사건은 나영이 사건이 아니라 "조두순 사건"이다. 세상 한 가운데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그를 향한 시선이 다양한 만큼 평범한 사람에게는 너무나 두려운 일이다.
by 땀c 2009.09.30 16:51
체인질링이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주제-  "공권력이 말하는 진실이 과연 진실일까" 

이 자체만으로도 주변에 매우 권하고 싶은 영화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다른 의문을 던져주기 때문에 저는 이 영화가 매우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지금 세상이 미쳤다고 말하는 그녀들은 과연 미쳤을까?"



검은 우산의 무리, 의심

크리스틴은 기자들 앞에 처음으로 진실을 알리기 위한 시도를 합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크리스틴.
기자들의 우산은 모두, 검은 색입니다.



그냥 스쳐가는 장면이었을 뿐인데, 저는 이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실제로 언론은 그녀가 "가짜 아들"과 찍은 사진을 내보냈고, 언론이 말하는 것이 진실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크리스틴은 이미 느꼈죠... 크리스틴은 언론과 세상이 모두 검게 보였던 것은 아닐까요. 캄캄하고 냉혹한 세상.


정신병원에 갇히는 여성들, 여성과 광기

정신병원에 강제 수용된 크리스틴은, 캐롤 덱스터를 만납니다.
창녀, 라고 불리는...그녀.  
사는 장소도, 하는 일도, 만나는 사람도 달랐던 그녀들이, 같은 이유로 정신병원에서 만나게 됩니다.

그녀가 크리스틴에게 이야기하죠. 이 곳에서 무사히 살아서 나가는 법과, 여자들의 말을 왜 세상은 믿어주지 않는가에 대해서.

무사안일을 강조하던 캐롤은, 크리스틴이 폭력을 당하자 달려들어서 그 댓가로 전기충격기의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그녀에게는 전기충격기의 무시무시한 폭력과, 창녀 주제에 감히, 라는 모욕도 쏟아지죠..

이 전기충격기 장면은 사실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아마 제가 "여성과 광기"라는 책을 보지 못했다면 저런 일이 정말 사실일까 하고 한번쯤 의심해봤을 겁니다. 그러나 영화는 그녀들이 정신병원에서 당했을 일에 대해서 반의 반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이 책은 정신병원에 가게 된 그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왜 여성은 미치게 되는가? 누가 그들을 미쳤다고 규정하는가? 정신병원에서 그녀들은 전기충격요법 뿐 아니라 하녀처럼 착취당했으며 성관계까지 요구 당했다는 것.., 영화를 보며 다시 아프게 기억해야 했습니다.

코드12 여성들이 풀려나게 되면서 크리스틴과 캐롤이 나누는 눈빛 속에는,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죠..
세상은 여전히 잔인할 것이지만, 당신을 만나서 잘 해볼 용기를 얻었다, 고 말하는 듯 합니다.



모성을 버렸기 때문에 갇히는 여성들, 그리고 나혜석

크리스틴이 정신병원에 수용당하는 이유는, "애써 찾은 아들을, 자신의 자유와 쾌락을 위해 외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장면에서도 왜 여성들이 미쳤다고 규정 당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게 합니다. 여성의 몫으로 주어진 모성에 충실하지 않는 나쁜 년이라는 것이죠. 남성이 그랬다면, 아동학대죄로 감옥에 갔을 텐데, 크리스틴은 모성을 저버렸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에 가게 됩니다.

이 대목에서는, 비극의 여인 나혜석이 생각납니다.. 그녀는 자유연애를 즐기며 방종하고 이혼을 당당하게 생각한다며 비난당했던 대표적인 신여성입니다. 당시 신여성은 기존 제도가 만들었던 전통적인 여성상에서 한참 벗어나므로 무수한 손가락질을 당했죠. 나혜석이, 당시의 신여성들이 정말, 애들은 내팽개치고 이기적인 행위만 일삼았던 "미친년"들이었을까요?

친구여, 세상엔 그런 여인들이 있었다고 하지,
가면을 벗어 조용히 응접실 탁자 위
가족사진 옆에 포개어 놓고
나의 시간도 아니고
너의 시간도 아닌
'가정의 날'이라는 영원한 반공일(半空日) 같은
어정쩡한 주부의 직업을 닫고
에미는 선각자였느니라----

- 김승희, "나혜석컴플렉스" 중



모성은 그냥 당연히 생기는 게 아니야


안젤리나 졸리가 보여준 절절한 모성애 연기가 일품이었다는 극찬을 많이 보게 되는데, 좀 아쉬운 평입니다. 제가 크리스틴을 보며 감탄했던 이유는, 단지 "선천적인" 모성이 아니라 공권력에 저항하는 용기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한 연대와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에 대한 책임감을 감당하지 못하고 떠나가버린 월터의 아버지와는 결코 맺을 수 없었던, 월터와 크리스틴 두 사람의 연대감, 그리고 그렇게 자란 월터는 자신의 목숨이 위험함에도 다른 사람을 구했던 너무나 용기 있고 사랑스러운 아이라는 것, 이런 것 때문에 크리스틴은 월터를 찾는 것을 멈출 수 없었을 겁니다. 모성이란 어디선가 짠, 하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by 땀c 2009.02.20 17:20

민주노총이 조직 보호 논리로 고위 간부의 성폭력 사건을 은폐했다며 난리가 났습니다.

기사들의 논조와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1. 노동운동하는 곳에서 성폭력이 일어나다니, 도덕성이 치명적으로 훼손되었다
2. 고위급 간부의 명예와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사건을 은폐했다.


이것을 이유로 민주노총에 대한 비난이 쇄도하고 있는 듯 합니다.

운동 조직 내에서 성폭력이 일어나는 것,
심지어 그것을 은폐하기까지 한다는 것,

나는 사실 이것 때문에 대학시절에 여성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분노도 많이 했고, 그런 현실을 바꿔보고자 많은 노력을 했었습니다. 지금도 현실은 어떤 부분에서는 그대로이며, 그 현실에 대한 분노와 답답함도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제 밤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기사와 댓글들을 보며, 우리나라가 과연 언제부터 이렇게 반성폭력 감수성이 뛰어났었나, 하는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보수언론사이트의 댓글은 대부분, "귀족노조, 자기 임금 올리려고 파업만 하는 쓰레기들이 별 수 있겠냐"
'참세상'과 같은 진보언론의 댓글은 대부분, "민중의 소리는 보도하지 않는 것 봐라. 내 우파 것들 그럴 줄 알았다. 북한 가서 김정일하고나 살아라."

성폭력 사건에 왜 귀족노조, 북한 김정일 이야기가 나오는 것일까요?
성폭력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그것 자체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한 조직에 대한 평소 자신의 반감을 굉장히 적대적으로 표출하고 있습니다.

가해자가 민주노총이든, 한나라당이든, 우리가 댓글로 논해야 하는 것은 그 조직에 대한 맹목적인 비난이 아니라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은 어떤 식으로 지켜져야 하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이런 사건이 터졌을 때, 2차 가해란 무엇인지, 성폭력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데 어떤 제약이 있었는지, 해결방법은 무엇일지에 대한 의견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듭니다.

민주노총을 비판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민주노총이 정말로 피해자를 압박하고 징계 수위를 조정해보려고 하고 사건을 부주의하게 유표하였다면, 그런 조직문화 자체를 비판했으면 합니다. 그럼 우리는 성폭력 사건을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지, 발생시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합니다.
민주노총에서는....사실관계 공방보다는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반성할 것은 확실히 반성했으면 좋겠습니다. 혹시라도 정파간의 문제인 것으로 이 사건을 축소하거나 본질이 흐려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 답게, 갈등에 몰입하지 않고 소수자의 관점에서 해결되기를 부디 빕니다..............
by 땀c 2009.02.06 11:40

 


서울 여성회 창립식 합니다 ^----^

"생활인 여성"이 만들어낼 서울!

by 비회원 2007.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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