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자전
감독 김대우 (2010 / 한국)
출연 김주혁, 류승범, 조여정, 오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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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대단히 많이 있습니다.

영화를 보기 직전에 들었다.
'춘향문화선양회'라는 단체가, 영화 <방자전>이 춘향전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상영중지를 요청했다 는 이야기를... 춘향은 떠난 님을 '끝까지 믿고' 기다리며 '정절'을 지켰던.... 여성들에게 욕망 억제를 강요하던 시대의 대표적 여성상 아닌가. 성명서를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춘향을 감히 모독하다니! 라는 지적은 여성들이 여전히 '춘향'처럼 살아야 한다는 주장일 뿐 아니라 심지어 예술적 상상력과 표현까지 제약하려 드는 것이기에, 어쩐지 영화 <방자전>을 무척 재밌게 봐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자를 유혹하는 기술 - 일단 만지고 나서 물어봐라?

영화는 꽤 재밌긴 했다. 마노인과 변학도를 보면서 "쟤들 땜에 미치겠다 ㅋㅋㅋㅋㅋ" 이러면서 여러 번 웃긴 했다. 영화를 곱씹어보기 전에는, 분명히, 재미를 느꼈다. 상상력도 참신하고, 고전을 비틀어보는 것 자체도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마노인과 변학도를 직접 만났다면, 내가 과연 웃을 수 있었을까나.

왠지 맹한 방자. 춘향에게 한 눈에 반했는데 도통 꼬시는 법을 몰라 마노인에게 조언을 구한다.
마노인은 무려 평생 2만명의 여자와 잔 스승을 모셨던 이다. 그 스승 못지 않은 포스를 풍기는 마노인의 비법 전수는.....

1. 몸종 향단을 만나 일단 무조건 할 말만 전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불시에 그녀의 성기를 움켜쥔다.
2. 춘향과 나란히 앉고, 뒤에 누워서 은근히 바라보다가, 돌아보면 불시에 키스를 한다.
3. 춘향이 자고 있는 방에 침입해서, 일단 만지고 난 후에 만져도 되냐고 물어보며 대답은 안 듣고 저항하건 말건 계속 만진다




방자가 그녀들을 바라보고 만지면 그녀들은 무조건 기뻐할 것인가? 왜 물어보지도 않고 좋아할 것이라고 멋대로 생각하는 것일까? 그녀들이 좋아했다면 그것은 하늘이 방자를 도운 것이지, 당연한 게 아니란 말이다.  

소위 야동에서 보여주는 시나리오, 여성을 강간하는데 강간 당하는 여성이 처음엔 저항하지만 결국엔 그녀도 기뻐한다.. 뭐 이런 남성 판타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불필요하게 친절하게 말하건데, 강간을 기뻐하는 여성이 얼마나 될 것이라 생각하는가!)

그 밖에 변학도의 변태 성욕이라던가, 향단이와 이몽룡의 난데없는 정사신과 향단이의 '내가 더 맛있지' 대사라던가... 섹스란 서로의 교감이라기보다는 남성의 성기 크기와 정력으로 대변되는 고루한 야동 판타지가 그대로 재현되는 걸 보면서...
이렇게 큰 스크린으로, 주말이라 제법 큰 돈 내고, 간만에 시간 내서 영화 보러 온 소중한 시간에 내가 야동을 보고 앉아있구나....이런 한심한 생각이 들어 슬퍼지는 것이다.

난처한 그들의 순애보

영화의 결말은, 좀 난처하다. 
춘향은 신분상승의 욕구를 선택하지만 방자에 대한 사랑은 진실이었다, 방자는 어찌어찌하다가 사고를 당해 아기처럼 되버린 춘향을 평생 돌보며 산다, 이러한 결말인데... 연출과 대사들은 분명히 나보고 감동하라고 하려는 것 같긴 한데,... 감동이 오지 않아 난처하다.

감동이란 무릇 공감을 해야 오는 것인데, 그들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에 전혀 공감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어이가 없었을 뿐이니, 감동이 올리 있을까.

돌이켜보니 <음란서생>의 결말도 '그들은 그래도 사랑했다' 라며 애절하게 끝났던 것 같다. 하지만 사랑을 논하려거든 '춘화'와 '야동'만 파는 것은 그만 헤어나오는 것이 어떨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 뿐이다.

* 이 글은 생활인 블로거 네트워크, 주권닷컴으로도 발행했습니다.

by 땀c 2010.06.12 03:48

난, 너의 손목을 본 적이 없었어. 우리가 함께 본 영화의 '지성희'(지진희)처럼. '성희'는 3년을 같이 산 부인 '영심이'의 손목에 자살을 시도한 흔적이 있다는 걸 전혀 몰랐지. 
너의 손목에 그런 흔적은 없지만, 또 다른 '손목'에 내가 알지 못하는 상처가 분명히 있을텐데.  내가 보려면 얼마든지 볼 수 있었고, 하지만 보지 못했던 그런 것들이 있을테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사람이, 그 사람의 생각과 고민을 알지 못한다는 건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 
'성희'는 '영심'과 연애를 하고 있던 중에도, 그녀에게 돈이 필요했고, 그녀가 '다단계'를 했다는 것도 전혀 알지 못했지. 그녀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리고, 난 지금 너를 얼마나 외롭게 하고 있을까. 

그녀는 애인이었던 성희에게 어떤 식으로든 표시를 했을 거야. 성희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거지. 그녀가, 솔직히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탓할 순 없는 거야. 그렇지? 사람은 보고 싶은대로 보고, 관심을 가지는만큼 보이고, 그러니까 그만큼밖에 보지 못했던 성희가 그녀에게 미안해해야 하는 거겠지. 그래서 그녀가 말했던 거잖아. 

"난 이해심이 부족했고, 당신은 이해력이 부족하더라."

밖에서는 세련되고 지적인 음악평론가지만, 편한 친구 앞에서는 누구보다 찌질하고 고집불통인 '성희'. 그는 나랑 참 닮아있는 거 같더라.  항상 '배려'를, '평등'을, '믿음'을 이야기하는 나였지만...뭔가 많이 알고 있는 것처럼 잘난 체 하는 나지만, 정작 난 굉장히 무심하고 찌질한 사람이니까 말야. 

그래서 난 오늘도 너에게 서운함을 느끼게 했나봐. 네가 나에게 했던 말, 표정, 행동들은 6년을 함께 했던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던 것들인데, 난 다른 사람들이 내려주는 해석에 흔들려버리고 말았지. 너는 왜 내게 믿음을 주지 않냐고, 왜 표현하지 않느냐고 너의 표현들을 모두 무시해버렸어. 그래, 정말 이해력이 딸리나봐 나는. 



우리가 함께 본 이 영화에서,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장면이 있었잖아. 남자 셋이 모여 집에 도배를 하며 가족을 기다리는 모습. 여자 셋이 모여 생애 처음으로 자유로운 여행을 하는 모습. 

남자 셋은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을 위해 노동을 하는 모습이 처음으로 그들을 편안하게 만드는 거 같아 좋아보였고,
여자 셋은 힘들게 살아온 그녀들이 처음으로 자기 자신들을 위해 선물을 해주는 모습이 좋아보였지. 

우리, 그렇게 서로와 자신을 위한 선물을 하며 살아가보자. 그들은 결국 헤어졌고, 미안해했고, "너를 잘 몰라서 미안했어"라고 사과했지만..  부족한 이해심과 이해력을 채워가며 우리는 같이 나란히 살아가보자. 서로의 '손목'을 들여다보면서, 기억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보자. 함께해줘서, 정말 고마워.. 
by 땀c 2010.04.19 21:30

영화를 선택할 때, 액션영화, 더군다나 전쟁영화는 가급적 안 고르는 편이다. <그린존>의 마케팅은 본 시리즈의 폴 그린그래스 감독과 맷 데이먼이 다시 뭉친 액션영화라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그린존>을 보자고 했을 때 "난 전쟁영화는 별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꽤 보았다.

멜로주의자도 빠져드는, 매력적인 액션

<그린존>이 액션 영화인 것은 분명해보인다. 액션영화를 즐기지 않는 나는 본 얼티메이텀을 보고 꽤 감동했는데, 특히 집과 집 사이를 통과하는 한치의 군더더기도 없는 본의 몸놀림과 절묘한 음악에 넋을 잃었었다. 액션영화에 비호감인 자도 빠져들게 만드는 폴 그린그래스의 적절한 긴박감, 과장되지 않은 날렵한 연출은 <그린존>에서도 역시 대단하다.

(개인적으로 이라크 시아파의 지도자로 나오는 알 라위의 카리스마와 영도력(!)에 완전 압도당했다! 정치적 입장에 관계 없이....어찌나 멋있던지 말이다. 그가 보여준 액션이라곤 도망가는 것 뿐이었는데! )

다큐는 아니지만, 다큐스러운

사실에 기반한 픽션이기 때문에, 결코 다큐는 아니지만 <그린존>은 꼭 다큐의 모양새를 보인다. 부시 대통령의 전쟁 종료 및 승리 선언이 실제 그대로 보여지고, 이에 환호하는 미군들의 모습은 대놓고 작정했구나, 하고 걱정이 될 정도다. (이를 두고 씨네21의 모 기자는 미국 네오콘들에게 왜 명예훼손으로 적극 대응하지 않느냐며 질타했다! 풉)

대량살상무기는 없었다, 반전 아닌 반전

이 영화에 큰 반전은 없다. 주인공이 결국 알아내게 되는 "대량살상무기는 없었다"는 것, 우리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이라크의 자유(Freedom of Iraq)'라는 거창한 명목으로 시작된 이라크 전쟁이 사실은 추악한 석유전쟁이라는 것과 미국이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거짓말은 새로울 게 없었다.

하지만, 다 알고 있었는데도 역시, 미 정부와 언론이 보여주는 비열함은 아무리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알려내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라크에는 꼭두각시 정부가 세워져있고, 수없이 죽어간 이라크 국민들의 아픔은 아직도 생생할 것이므로.



'대량살상무기 증언을 조작한 게 뭐 대수냐' 라는 미 정부와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는 언론을 향해 군인 밀러(맷 데이먼)는 외쳤다.

"그게 전쟁을 한 이유인데! 당연히 중요하지!"


이 영화의 진짜 반전은 <그린존>

사실, 대량살상무기는 없었다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긴 하지만, 포탄이 펑펑 터지는 이라크 안에 "그린존"과 같은 미국인들의 휴양지가 있다는 건 거의 알려지지 않은 듯 하다.

‘그린존’이란?
2003년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뒤 후세인이 사용하던 바그다드 궁을 개조한 미군의 특별 경계구역으로
미군 사령부 및 이라크 정부청사가 자리한 전쟁터 속 안전지대.
고급 수영장과 호화 식당, 마사지 시설, 나이트 클럽뿐 아니라 대형 헬스 클럽과 댄스 교습소가 존재 했으며
이슬람 국가에서 금지되었던 술이 허용되었다.

- DAUM 영화 정보 중

침략당한 이라크 국민들 뿐 아니라, 미 정부가 거짓말로 벌려놓은 판에 죽어라 땀 빼고 다치고 죽던 미국의 사병들도 그린존이라는 공간에서는 딴 세상 이야기였을게다. "그린존"은 이라크 한복판에서 그렇게 수많은 사람을 조롱하면서 존재하고 있었고, 그 어느 곳보다 많은 사람이 피흘리던 곳에 위치한 이름이 'green'이라는 것은 미국 정부의 뻔뻔함을 그대로 상징하고 있었다.

간단하고 당연한 명제, "이라크는 이라크 국민의 손으로"

액션영화, 전쟁영화만큼 우리 편과 적이 뚜렷이 구분되는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는 그렇게 단순한 선 긋기가 쉽지 않다. 이라크 내부의 정치세력과 역사를 잘 알지 못하면 더욱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특히 밀러 팀장의 통역을 맡게 되는 프레디의 행동은 볼수록 아리송하다. 당췌 '누구의 편'인지 알 수 없게 굴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프레디가 그 답을 풀어준다.

"이라크가 어떻게 되든 당신들이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시아파가 독재를 했든 안 했든, 이라크 내에서 정치세력이 싸우든 말든, 미국이, 그리고 프레디를 평가하려던 내가, 대신 결정할 순 없는 것이다. 꼭두각시를 꽂는 것으로, 더우기 전쟁으로는 그들에게 폐만 끼칠 뿐이라는 것이라는 피울음 섞인 항변인 것이다.

전 세계의 "일진"을 자처하며 세계 곳곳을 들쑤시는 미국을 뜨끔하게 만들도록.... 전 세계에서 <그린존>에 열광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한다.


* 이 글은 생활인 블로거 네트워크 "주권닷컴"으로도 발행했어요
by 땀c 2010.04.06 23:34


구스 반 산트 감독, 숀 펜 주연의 2008년작 <밀크>가 드디어 우리나라에서 개봉했습니다.

성소수자 최초로 미국 시의원이 되었던, 샌프란시스코의 게이 인권운동가이자 정치인, <하비 밀크>의 삶을 그린 영화입니다.

영화는 과장하지 않고, 하비 밀크라는 평범했던 직장인이 나이 40에 인권운동과 정치를 시작한 마지막 8년을, 담담하고 차분하게 보여줍니다.


시작은, '나 여기 있다'고 목소리를 내는 것

그 시대, 그 나라에서도 공권력은 주류들만을 보호하나 봅니다. 게이들의 주점을 때려부수며 술을 마시는 그들을 '진압'합니다. 그들이 존재하는 것을 '죄'로 여깁니다.

동성애자들은 길을 걷다가 린치를 당하며, 어느 날 하비 밀크의 친구도 살해당합니다. 친구가 죽어가던 순간 마지막으로 들은 말은 '호모 새끼' 였고, 곁에 있다가 이것을 목격한 그의 애인은 '매춘 상대 손님' 이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유쾌한 평범한 남자, 공화당 지지자였던 하비 밀크.
'게이'라는 것 말고는 평범하기 그지없었던 그가 깨달은 것은, "나 여기 있다"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정치 활동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흑인을 위한 대변인들이 있듯이, 우리도 정치인이 있어야 해. "나 여기 있다"고 말하면 주목 받을 수 있을 거야.
이렇게 말하며 시의원 출마를 결심합니다.

우리도 당신들과 같은 권리를 가진 사람이다, 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시작한 정치는, 그 생명력이 다를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것은 자신의 문제로부터 절박함을 가지고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연대로 시작하여, 연대로 이루어낸다

하비 밀크와 그 친구들은, 노동조합과 불매운동에 연대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맥주 불매운동에 적극 참여한 동성애자들 덕분에 불매운동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비 밀크는 성소수자들만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소외된 시민들을 위한 정책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노인 복지, 교육, 소외된 계층을 대변하겠다는 약속을 했고, 이것은 그가 시의원이 되고 난 후에도 일관된 정치관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면서도 그가 잃지 않았던 것은, 자신은 "게이"라는 정체성이었습니다. 게이들을 위한 정치인이 되고 싶었고, 자신의 정체성을 희석시키지 않고 분명하게 세상을 향해 드러내겠다는 의지를 잃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가 세 번의 낙선을 거쳐 결국 당선하게 된 것은, 끊임 없는 연대와 자신이 대변하겠다고 결심한 성소수자들을 향한 애정 때문이었습니다.



정치란,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
그리고 그들에게 권력을 주는 것

하비 밀크가 '이슈 파이팅'을 잘 하는 것에 대해, 동료 시의원이었던 댄 화이트는 적의를 드러내며 자신에게도 '이슈'가 있다고 강변합니다. 그러나 하비는 자신이 하는 정치는 단지 이슈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단지 이슈를 넘어, '우리에겐 목숨이 걸린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비 밀크가 계속되는 실패와 갈등 속에서도 계속해서 정치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한 소년과의 전화 통화도 있었습니다.
동성애자들을 삶터에서 끌어내 정신병원으로 몰아넣는 '아니타'법이 통과된 순간 한 장애인 소년이 절망 속에서 하비 밀크에게 전화를 걸었고, 밀크는 이길 수 있을까 하는 불확실 속에서도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계속 나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비 밀크가 연설을 시작하면서 항상 했던 말은, "여러분을 동지로 모십니다." 였고, 투표를 호소하면서 했던 말은 그 동안 소외받아온 "당신들을 뽑고 싶습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정치인 한 사람에게 권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에게 권력을 주겠다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암살되기 전 그가 남긴 유서의 마지막 구절은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명대사였습니다.

"정치란 개인의 이익이나 명예를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살게 하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희망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나도 압니다.
그러나 희망 없는 삶은 살아갈 가치를 잃습니다.
그러니 당신, 당신, 당신도,
그들에게 희망을 주십시오."


하비 밀크의 마지막 말은 그대로 실현되었습니다. 정치나 운동에는 전혀 관심 없던 소년 클리브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안온한 삶을 원했던 스콧도, 그의 바람대로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실천을 이어가고 있다는 영화의 엔딩은 어쩌면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일지도.

자신의 부나 명예와 관계 없이, 자신의 정치로 누군가를 '살게 하는' 정치인이, 대한민국에 아주 많아졌으면 합니다.  앞으로의 모든 선거에서 우리는 <밀크>와 같은 후보를 눈 크게 뜨고 찾아서, 우리 스스로를 권력의 주인으로 만들었으면 합니다.

* 이 글은 생활인 블로거들의 네트워크 "주권닷컴"으로도 발행했습니다.
 
by 땀c 2010.03.02 22:19

*<디어존> 시사회 관람.. 후 스포일러 잔뜩 남깁니다. '비추'이니 스포일러는 별 신경 안쓰입니다만.

박스오피스 1위라는 사랑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했더니...

'애절한 사랑'을 만들기 위한 코드만 난무하고 있었다.

단 2주만에 사랑에 빠진다.
남자는 군대에 간다.
때마침 전쟁이 터진다.
2주간의 사랑이 수 년으로 길어진다.
그들은 편지로만 사랑을 나눌 수밖에 없다.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은 여자는 아파서 돌봐줄 수 밖에 없는 이웃과 결혼을 결정했다.
하지만 여자는 남자를 여전히 사랑한다.
몇 년 후 재회한 그들은 운명의 장난에 한없이 슬플 뿐.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러 그들은 다시 만나게 된다.

2주만에 운명의 사랑에 빠진다는 비현실성과...약자를 향한 희생정신이 넘친다지만 '운명의 사랑'까지 버려버리는 범상치 않은 결정...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고 치자. 아름다고 훌륭하기는 하다.
그러나 공감은 어렵다..

사바나, 희생만 하는 삶이 행복하니?

사바나는 따뜻하고 참 괜찮은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과 소통이 어려운 이웃집 앨런과 존의 아버지를, 그들의 가족보다 더 잘 보살펴준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까지 잠식해버린 그녀의 인생이 그녀는 정말 행복했을까. 남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서 그녀 스스로 한 선택이었지만, 그녀는 절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존과 사랑에 빠진 것까지, 그녀가 뭔가 결핍된 사람에게 더 애정을 느끼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존은 실제로 아픔이 많고 벽에 둘러싸인 사람이었다.

사실, 이 부분에 좀 의문이 남는 것이... 영화는 주로 존의 시점에서 진행되는데, 존과 같이 지극히 남성적이고 거친, 상처가 많은 남자가 한없이 포근한 성녀와 같고 아름답기까지 한 그녀를 만나 비로소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뭐 이런 걸 함축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전쟁은 현실, 그들의 사랑은 판타지

미국이 원인을 제공해 벌어진 9. 11. 테러, 미국이 시작한 침략 전쟁인 이라크 전쟁의 정치적 배경이 이 영화에서는 무엇이었을까. 평범한 사람들에겐 정치적 의미가 무엇이든간에 그들의 사랑에 장애물 뿐이었을지는 몰라도, 그것이 그렇게 간단하게 무시되는 것은 불편하다.

9. 11. 테러 이후 스스로 "복무기간을 연장하겠습니다!" 라고 외치며 일어서는 U.S.ARMY의 미국 젊은이들의 모습은 참으로 갑갑하다. 그런데 존이 차마 바로 자원하지 못하고 갈등했던 것도, 사랑 때문이었지 전쟁에 대한 성찰은 손톱만큼도 없었고, 오히려 조국(미국의 침략전쟁)을 위해 그는 사랑을 뒷전에 배치했다.

솔직히 이 대목에서도 그들의 사랑을 응원해줄 수 없었기 때문에, 영화는 초반부터 몰입을 너무나 떨어뜨려버렸다.

그나마 건진 것들

그나마 이 영화에서 볼만한 장면은, 쓰러진 아버지 앞에서 존이 자신은 미국의 동전이었다며, 구멍이 난 불량화폐인 아버지와 자신을 안쓰러이 여기는 모습일 것이다. 아버지의 주름진 손이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아들을 위로하는 장면은 맘이 아린다. (그러나 아주 미미하게 지나가는 장면인 것. 아버지가 왜 병실에서 밀려나와 복도에 있는지 너무 궁금했는데, 끝내 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건진 것은, 아만다 사이프리드, 그녀는 너무나 예쁘다는 것.....
맘마미아에서 볼 때보다 더 친숙하고 자연스러워 몰입하게 되는 그녀였다.



500일의 썸머 같은 현실적인 로맨스가 훨씬 좋은 건, 내가 나이가 들어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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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땀c 2010.02.25 18:10

영화 <친구사이?>가 "영상물 등급위원회"를 상대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판정 취소소송을 청구했다고 합니다. 영화 <친구사이?>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12세 이상 관람가로,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15세 이상 관람가였다고 합니다.

기사만으로는 영등위가 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판정을 했는지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몇 년 전 있었던 사건이 떠올라서 그 이유가 충분히 추정되네요.

동성애는 청소년 유해물이다?

2002년 즈음,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서는 청소년을 보호하겠다고, '수호천사'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전국의 초중고, PC방등에 유해사이트 차단 프로그램으로 설치되었죠. 그래서 수많은 동성애 관련 사이트가 차단되었습니다. 동성애 잡지 [advocate.com]과 UN의 자문단체인 [동성애자인권운동네트워크](ilga.org), [이반시티], 국내 최초의 인터넷 게이 커뮤니티인 [엑스죤], 한국여성성적소수자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와 같은 인권단체들도 차단대상이 되었습니다.

당시의 사이트를 차단했던 이유는 "사회통념상 허용되지 아니한 성관계를 조장"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영화 <친구사이?>는 그로부터 약 10년이 흘렀는데도 똑같은 일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 <친구사이?>를 보고 난 소감

며칠 전에 저는 <친구사이?>를 보고난 감상을 포스팅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제가 느낀 것은, 풋풋함, 사랑스러움, 애잔함, 위로, 이런 것들이었어요.
<친구사이?> 감상평 보기, 클릭!

그리고, 많이 관심을 가지고 있을 그들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글쎄요, 사랑하는 20대들이라면 당연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장면이었습니다. 같은 장면을 이성이 찍었다면, 평범하기 그지 없을 장면입니다.

참으로 싱그러운 그들.



김조광수 감독은 "소년, 소년을 만나다"에서 10대 소년들의 사랑을 그렸고, <친구사이?>에서는 대한민국에서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20대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었다고 합니다. <더 월 2>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여성 동성애자들의 이야기를 10대, 30대, 60대 노인의 시점에서 잔잔하게 그려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더 월 2>와 같은 좋은 영화가 계속 나올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도 품게 해준 영화입니다. 우리가 잘 모르는 것, 하지만 알아야 하는 것을 알려주는 영화, 사람이 누구나 자유롭게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이런 것을 <좋은 영화> 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성애가 나쁜가? 자유를 침해하는 사회가 나쁜가?

너는 왜 이성을 좋아하는 거야! 어디가 잘못된 거 아니니? 정신과 상담 한 번 받아볼까?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을 상상해본 적 있으신가요.


동성애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동성애가 퇴폐적이고 에이즈와 같은 병을 낳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오히려 이성간의 섹스가 폭력적이고 건강에 위해가 되는 방식으로 행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성간에도 청결하지 않은 방식으로 관계를 가진다면 에이즈 또는 각종 성병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죠.

세상에는 다수가 정해놓은 rule 이 있어서, 이것에서 벗어나면 나쁘게 보이는 법입니다. rule 은 지배하다라는 뜻도 있지요. 지배자, 다수의 권력이 만들어놓은 것은 소수자에게는 억압으로, 부당한 권리 침해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어른이 되면 성적으로 성숙한 인격체가 되나?

청소년들에게 제대로 된 성문화를 심어주는 것보다, 무조건 차단하고자 하는 지배적논리 역시 유감입니다. 10대에는 무엇이든 처음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무분별한 접촉보다는 '바른' 경험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어른들이 할 일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너희들은 아직 그런 거에 관심 가지면 안돼.'라며 진실을 가리려고 하거나, 여자 아이들에게 순결 캔디 같은 것을 나눠주며 성에 관심을 가지는 자연스러운 행동을 비난하는 것은 그리 맞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성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주는 것이 진짜 아이들을 위한 것 아닐까요. '자위'는 나쁜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거야. 나중에 성관계를 하게 되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할 수도 있으니까 '피임'은 꼭 하렴. 피임 방법은 이런 이런 것들이 안전하단다. 성관계를 할 때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확인하는 것이 중요해. 니가 좋은 것이 상대방에게는 좋지 않은 것일 수도 있거든. 그리고 혹시 이성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좋아진다면, 그것 역시 자연스러운 것이니 너무 괴로워하지 않아도 돼. 이런 이야기들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영화 <친구사이?>는 성적 정체성 혼란으로 힘들어하는 10대와 20대에게 위로가 되는 영화입니다. 주인공 민수와 석이는 서로를 정말 아끼고 기운을 북돋아주는 방법을 아는 멋진 친구들입니다. 2002년 당시 동성애 사이트를 차단할 때, 기댈 곳이 없어 그나마 온라인으로 고민을 털어놓고 기운을 얻던 친구들은 이중으로 가슴에 상처를 입어야 했습니다. 자살을 상상하고, 실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친구들도 있었어요. 이것은 가히 사회적 살인이라고 불러도 무방합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은 우리가 깨기 어려운 것 중에 하나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여기, 동성애, 트랜스젠더 등에 대한 편견을 유쾌하게 날려버리는 만화를 소개합니다.





네이버에서 연재중인 <어서오세요 305호에>라는 만화에서는, 대한민국 평범 20대인 주인공이 어떻게 좌충우돌 자신의 편견을 깨닫게 되는지 생생하고 재미나게 그려집니다. <305호>의 세상은 유토피아도 아니고, 상상도 아닌 우리가 맘만 먹으면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세상입니다.

영화 <친구사이?>에 대한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은 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 수많은 성소수자들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부당합니다. 영화도 더욱 많은 분들이 보았으면 좋겠네요.


* 이 글은 생활인 블로거 네트워크 "주권닷컴"으로도 발행했어요~

by 땀c 2010.02.05 11:27



동성간의 사랑을 극장에서 스크린으로 본다는 것은, 긴장되는 일이다. '브로크백마운틴'을 보다가 욕을 내뱉으며 극장을 나가던 남자,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동구가 선생님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순간 관객들이 던지던 부담스럽다는 탄식. 그 순간 극장안에 있었을 성소수자 누군가는 가슴에 대못이 박혔을 게다. 내가 받은 작은 상처도 아물지 않았는데. 하물며.

중앙시네마에 있던 열명도 안되는 관객들은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영화를 더 많은 사람이 보지 않는 것은 많이 아쉽지만, 덕분에 그들의 싱그러운 사랑에 순조롭게 몰입할 수 있었다.

군대 간 애인을 처음으로 면회가는 길. 석이는 웃음이 자꾸만 나와서 주체하지 못한다. 직접 만든 초코렛을 소중히 안고서. 석이가 여자였다면 이 행복은 너무나 평범해서 눈길조차 끌지 못할, 그런 평범한 대한민국 20대의 사랑이다.

면회신청서 관계란의 '애인'을 썼다가 박박 지우고, 뒷면에서 보일세라 뒷면까지 꼼꼼히 지우는 동안, 석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이 곧 눈 앞에 보일테니 이쯤이야 일도 아니다, 그럴 수 있었을까?



사랑을 하게 되면, 더군다나 오랜만에 만난 연인이 옆에 있으면 한없이 바라보고 만지고 싶어지는 것.이것 또한 평범한 20대의 사랑이다. 옆에 누가 있든 말든.

사랑을 나누다가 엄마에게 딱 걸리는 상황, 이건 누구에게나 아찔한 상황이지만 그들은 사정이 다르다. 엄마의 충격과 상처를 아프게 보듬어야 한다. 자신의 상처도 돌아볼 새 없이......의도치 않았던 커밍아웃도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정신없는 상황.

민수는 엄마에게 '난 남자가 좋아요. 하지만 행복하게 살께요. 당당해질거에요' 라고 이야기한다. 눈이 빨개져서 민수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은 '천하장사 마돈나'의 동구 엄마 같다.
'앞으로 정말 힘들거야. 괜찮겠니...?' 라고, 아들 동구의 손을 붙잡던 엄마.

사랑을 하는 것이 미안해지게 만드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가.



애인을 수줍게 소개하는 장면. 사장누나의 따뜻한 눈빛은, 면회 신청서에 쓴 애인을 지우던 석이에게 치유가 되었겠지 싶다.   
세상 살 만하다,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건 어찌 보면 참 쉬운 일이다. 그 쉬운 일이 쉽지 않은 이 세계. 다른 사람에게 소중한 것을 부정해가며 애써 힘들고 피곤하게 사는 것은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지.



사람이 가득한 광장에서 키스를 나누는 그들. 이 모습은 환타지로 느껴질 정도로 평화롭고 아름답다. 앞으로 감내해야 할 수많은 것들을 서로 단단히 끌어안고 이겨내겠다는 다짐은 멋지지만, 애잔하다.
실제로 이 장면을 촬영하던 동안 한 덩치 큰 외국인이 화를 내며 그랬단다.
"지금 뭐하는 짓이야? 하늘이 보고 있는데 부끄럽지도 않아?"
그 외국인이 모시는 하늘은 백인 이성애자 남성들만 사는 곳이었던 게지....

실제로는 게이가 아니었던 배우들은, 그 외국인의 행동에 상처를 입었고 한동안 아파했다고 한다. 그렇게 자신이 몰랐던 누군가의 상처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이 세상을 바꿔나간다. 그렇게 '여자친구 있어요?'라는 질문을 '애인있어요?'로 바꿔가며, 그렇게 세상은 조금씩 더 나아진다.

홍길동에게 호부호형이 허락되지 못한 것은 적자만 인정하는 더러운 세상이어서 그랬다.
이성애자의 사랑만 인정하는 세상. 이성애자가 아닌 이들에게 애인이라는 호칭을 허하자. 홍길동이 살던 시대의 낡은 봉건의식이 사라진 것처럼,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낡은 이성애자 중심주의도 곧 사라지겠지.


* 이 글은 생활인 블로거들의 네트워크 "주권닷컴"으로도 발행했어요~

 
by 땀c 2010.02.02 22:11



가진 것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숨어있는 애환, 뭐 그런 거겠지.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그녀들이 "쏟아내는" 이야기들에 빨려들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1.
자기중심적이고
콧대높고
질투심 많고
인내라고는 모른다, 라고 보이는
여배우들.

예쁘다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안 예쁘다 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보다 행복한 것 같지만
사실은 이 사회가 가리키는 기준에 가장 많이 부합되는 그녀들이어서 
그 누구보다 불안하다.

피부가 좋아야 하고
날씬해야 하고
깔끔해야 하고
때로는 털털해야 하고
이혼하면 안 되고
때로는 사랑도 하면 안되는

이러한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은 애초에 그저 평범하게 살지만
그녀들은 이 조건들을 충족하는 긴장 위에 살기에 '최고'라고 칭송받고 사는 것이다.

그녀들은 말한다. 여배우들이 함께 만나지 않는 이유는, 단지 질투가 아니라 자신이 덜 주목받는 것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누구보다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맞춰서 살면서
자기 자신의 중심은 놓지 않고 살아야 하기에
그렇지 않고는 못견디니까, 어느 덧 자신은 사라져버리는 것 같으니까, 그녀들은 힘들다.


2.
가장 주목받기 때문에 때로는 안받아도 되는 수모를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에 그녀들은 다 같이 울음을 터뜨린다. 순간, 여성 연예인들이 뭇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 내가 왜 불편하고 불안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녀들은 아마 자신이 직접 당하지 않았어도, 동료 여성 연예인이 수모를 당하는 것을 보고 못지 않게 괴로웠음이, 불안했음이 틀림없다.
그 공격은 '너도 이렇게 하기만 해봐. 우리가 정해놓은 이 선에서, 조금도 비껴나면 안돼' 이렇게 보이니까. 그녀들에게도, 나에게도.




3.
얼른 나이를 먹고 싶은, 모든 것이 어설프고 불안한 스물세살, 김옥빈
어느 것 하나 이뤄놓은 게 없는 것 같고, 지나가는 이십대가 아까운 내년엔 스물 여덟살, 김민희
꽤 성공했다고 자부했지만, 내려가는 것이 불안한 삼십대 중반, 최지우
나보다 잘 나가는 후배와 나이 들어가는 선배들 사이에서 허탈하고 생채기도 많은 삼십대 후반, 고현정
모두들 나이 들어가는데, 나이드는 것도 평가 받아야 하는 삶이 답답한 쉰살, 이미숙
이제 당당하기보다는 주변 분위기 파악을 먼저 하게 되는,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은 너무 많은 육십대, 윤여정

그녀들의 표정이, 말이, 감정이 하나하나 와닿아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샤넬과 디올을 걸치고 돈 페리뇽을 마시는 그녀들이....지극히 평범하고 가난한 나와 내 주위의 언니들이 했던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서로 이야기 나눌 수 있음에 기뻐한다.



사람들이  
그녀들의 아름다운 모습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녀들의 이야기를 많이 많이 듣고 공감까지 하게 된다면
'여배우들'을 비롯해서 나 같이 평범한 여자사람도 조금 살기 나아질지도 모른다.
by 땀c 2009.12.22 00:45

홍길동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으로 영화를 보았습니다.

홍길동 하면 떠오르는, 세상에 대한 풍자를 기대했거든요.
그 어느 나라보다 히어로가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대한민국인데, 이런 영화가 진작 나왔어야 하지 않나! 하면서..

제가 기대하는 쪽이 그런 쪽으로 치우쳐서 그런지 그런 부분은 좀 아쉬운 것이 사실이었지만....
김수로가 연기한 돈많은 악당 "이정민"은 꽤 한국형 악당으로 잘 그려진 것 같습니다.

영화의 전제는 홍길동이 실존 인물이고, 그가 행했던 "부의 재분배"(^^;;)가 원칙을 가지고 대를 이어 계속되었다는 설정입니다.
홍길동의 행위가 아무리 탐관오리들의 재물을 백성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라고 해도,그 행위는 "절도"라는 것에 대해서 나름 껄쩍지근함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절도니까 옳지 않아! 라고 하기에는 이 사회는 너무나 불공평하고, 정말 때려주고 싶은 이들이 있습니다.



부자가 서민을 논할 때의 모순

이정민(김수로 역)은, "츄리닝의 경제학"으로 인기몰이를 합니다. 츄리닝이 무엇인가요! 서민, 백수의 대명사 아닙니까. 하지만 이정민은,각종 보석을 박아 넣은 초 럭셔리 츄리닝 패션을 보임으로써 서민을 이야기하는 그의 모순을 보여줍니다.

이정민은 불우이웃돕기 자선 프로그램에 억대의 후원금을 기부함으로써 또다시 서민을 이야기하지만, 그의 재개발로 쫓겨나는 철거민들에게 "새 집 지어주겠다는데 왜들 저 난리야"라고 이야기합니다.
겨울철 철거로 세입자가 목숨을 끊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이 나라에서, 재개발과 부동산의 왕국인 이 나라에서 이정민은 참으로 전형적인 한국형 악당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형 악당과 정치인들과의 공생관계

이정민의 사무실에는 박정희 사진이 위풍당당하게 걸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비리와 악행을 까발리겠다는 검사에게 이정민은 당당히 이야기합니다.
"내가 다치는 걸 싫어하는 분들이 좀 많아서 말이야"
박정희의 차관배분과 금융지원으로 한국의 재벌들은 성장했습니다. 권력에 의존하여 성장한 한국형 재벌들, 그들이 어디에 기반하고 있는지, 한국의 정치인들도 어디에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간단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강대국형 히어로가 되고 싶은 한국형 악당

이정민은 츄리닝에 보석 뿐 아니라, 버젓이 빨간 동그라미를 등에 붙이고 있기도 합니다. 누가 봐도 일장기입니다. 이정민이 분노할 때는 미국형 히어로 '수퍼맨' 복장을 드러냅니다.
한국형 악당들이 가지고 있는, 미국과 일본에 대한 향수를 보여주는 것 아닐까요?




드라마 '쾌도 홍길동'을 보면서 느꼈던 이 사회의 모순과 그것을 해소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망이 이 영화를 보면서도 느껴졌습니다. 물론 영화의 주된 흐름이 그런 내용이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만, 한국 사회에서 홍길동은 잊혀지기 어려운 존재이고, 오히려 홍길동이 계속 존재하길 바라는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홍길동의 고민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마지막에서 홍길동은 여전히 계속 활동하고 있었으니까요.  



* 이 글은 '주권닷컴'으로도 발행되었습니다. (>ㅁ<)
 

by 땀c 2009.12.04 15:44
뉴스를 보면서 '저런 놈은 공개사형시켜야 돼.'를 쉽게 중얼거리는 우리들이,
그를 실제로 죽여야 하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는 순간은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사람이 돌아보지 못하는 것을 돌아보게 하는 점에서, 이 영화는 매우 소중하다.

*스포일러 가득 있습니다.


폭력에 익숙해지거나, 시달리거나

노련한 교도관인 종호(조재현)는, 초보 교도관 재경(윤계상)에게 말한다.  
짐승은 자신보다 센 놈에게는 결코 덤비지 않아.
종호와 재경은 거친 말과 물리력 행사로, 자신이 재소자들보다 강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교도소 생활에 적응했다. 그들은 과연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일까. 사형수 장용두가 자신을 죽이게 될 종호에게 남긴 말은 섬뜩한 진실을 담고 있다.

처음이 어렵지, 계속 하다 보면 익숙해져.


사형이 번번이 집행되던 시절, 당시 사형을 담당했던 이들은 교도관 생활을 그만두고도 평생 수면제에 의존하게 되었다. 교도관 생활을 그만두진 않았지만 사형수와 우정을 쌓는 것으로 자신을 치유했던 김교위는 다시 한 번 잔인한 폭력 앞에 노출된다. 폭력 앞에 노출된 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그 앞에서 자유롭지 않다.


사형을 '결정'하는 사람과 '집행'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법무부로부터 사형 집행 공문이 날아왔다. 그 순간부터 사형이 집행되기까지, 집행자가 된 교도관들의 심리적 갈등과 고통은 굉장하다.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두려움, 찝찝함, 죄책감, 그리고 친한 벗을 직접 죽여야 하는 잔인함까지 그들은 감내해야 한다.


그러나 사형을 실제로 결정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매우 간단하다. 법무부 장관은 몇 초간 펜대를 굴려 사인만 하면 될 뿐이고, '검사님의 바쁜 일정' 을 걱정하는 교도소장의 재촉으로 사형은 서둘러 집행되어야 했다. 사형이 집행되자마자 '결정자'인 그들은 바삐 사형장을 떠난다. 그들에게는 천하의 죽일 놈 살인마 '장용두'를 법대로 처리했다는 정당성만이 남을 뿐이다.

그 뒤에는, 사형수의 죽음을 끝까지 확인하고 확인살인까지 해야 하는 '집행자'들이 남아 있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주었던, 종호의 순진했던 신입 교도관 시절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아프다.


살아있는 것을 죽여야 하는 그녀

재경이 사형을 집행하던 날, 재경의 애인 은주는 임신한 아이를 '죽여야' 했다.
임신한 사실을 알았을 때,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자신이 결정할 수 없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공무원 수험생, 비혼 여성일 뿐이었다. '어떡할까?' 라고 그녀는 묻고, 재경은 계속 시간을 달라고 한다.


혼자 병원을 찾은 그녀는 울면서 재경에게 이야기한다.
넌 결국 네 입으로 말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야. 네 손에 피 묻히고 싶지 않았던 거라구
재경은 자신이 그녀에게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까.
아이를 낳고 싶지만 낳지 못하고 죽이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
그것은 그들이 '선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의 손에 피를 묻히게 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누구를 위한 사형인가?

사형수 장용두는 죽어가는 순간까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다.
그리고 뼈아픈 한마디를 남긴다.
난 이제 못하지만, 너희들은 계속해서 죽이겠지
장용두에게 잔인하게 살해된 피해자의 언니는 그의 사형 집행을 반대한다고 했다.
그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깨닫게 하기 위해, 평생 괴롭히며 상기시켜줄 것이라고.

장용두의 사형 집행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장용두에게 잘못을 깨닫게 하고 싶었던 피해자도, 잘못을 깨닫지 못했던 장용두에게도, 장용두의 사형을 집행한 교도관들에게도 그의 죽음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장용두의 사형 집행을 원했던 피해자 가족들의 상처는 치유가 되었을까.


<기록할 수 밖에 없는 단상>
- 트위터를 통해서 국회에서 시사회가 열리는 것을 알고 무료로 보게 되었다. 트위터 덕분에 나같은 '비관계자'도 국회에서 영화를 보게 된 것은 참 멋지다.

- 민주당 소속 유선호 법사위원장이 주최의 한 말씀하셨다. '참 유쾌하고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유머 코드가 좋긴 하지만 그렇다고 유쾌하다고 하기에는 민변 발기인이라는 그의 경력이 좀 아깝지 않나. 앞부분만 보셨거나, 권력을 향한 처절한 비난을 애써 외면했거나.

- (아마도) 국회경비대 소속의 20대 초반 청년들이 단체로 보러 왔다. 영화 보는 내내 마스크를 쓰고 있고, 영화가 끝나자 동시에 일어나 줄지어 이동해야 했던 그들. 그들의 일상과도 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

- '교차상영'이란 천박한 제도 따위가 이런 괜찮은 영화를 잡아먹다니. 자본과 권력, 그래 너네 참 위대하다.

 
* 이 글은 생활인 블로거 네트워크, 주권닷컴으로도 발행되었습니다.

by 땀c 2009.11.17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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